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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
[[파일:William Rainey, Philopoemen in prison.jpg|섬네일|필로포이멘의 최후, 1910년 런던, 윌리엄 레이니 그림]]
그리스에서 [[안티오코스 3세]]를 물리친 로마의 권세는 대단했다. 그러나 필로포이멘은 아카이아 동맹이 로마를 대적할 수 있다고 끝까지 믿었다. 그가 추방한 스파르타 인의 귀국을 로마가 막자 이번에는 로마에 적대했다.<ref>플루타르코스, “필로포이멘” 17 </ref>
 
[[기원전 183년]], 필로포이멘이 나이 70에 도달했을 무렵, 디노크라테스의 주도로 메세네에서 반 아카이아 동맹의 반란이 일어났다. 디노크라테스는 코로니스라는 마을을 공격하려고 했다. [[아르고스]]에 반란 소식을 접한 필로포이멘은 하루 만에 메갈로폴리스로 급히 가서 기병 부대를 이끌고 출격했다. 그는 에우안도로스라는 언덕 근처에서 디노노크라테스와 전투를 벌여 패주를 시켰지만 새로운 적 방력 500명이 왔다. 따라서 포위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필로포이멘은 철수했지만, 낙마하여 메세니아 인들에게 포로로 잡히게 된다.<ref>ibid 18 </ref>
 
투옥된 필로포이멘은 독을 마시도록 강요받았다. 당시 이것은 명예로운 죽음의 방법으로 간주되었다. 그는 부하 장군인 [[리코르타스]]의 안부를 묻고, 그가 도망갔다는 말을 듣고는 "당신은 좋은 소식을 알려 주었다. 우리는 전혀 불행하지 않은 것 같다"라는 말을 남기고 독을 마셨다.<ref>ibid, 20</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