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카 법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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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Jugement de Childebert III accordant à l'abbaye de Saint-Denis la terre de Hodenc-l'Evêque dans l'Oise.jpg|섬네일|[[킬데베르투스 4세]]의 판결문, 살리카법을 판결 근거로 들었다.]]
'''살리카 법전'''({{llang|la|Lex Salica}})은 [[살리족]](族) [[프랑크]]의 부족법전(部族法典)이다.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거쳐 고전문화의 세례(洗禮)를 받은 결과 편찬(編纂)된 [[라틴어]]의 이른바 만인법(蠻人法)·부족법(部族法) 중의 하나이다. 다른 게르만의 부족법전에 비해 게르만 고래의 전통이 가장 강하다. 5, 6세기에 성립([[클로비스]]가 죽은 511년 이전)된 것으로, 살리족이 프랑크의 중심세력이 되었기 때문에 [[리부아리아 법전]]이나 프랑크 제국법(帝國法)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하여 후대의 유럽 제법(諸法)에도 강한 영향을 미쳤다.
{{게르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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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글|법}}
 
[[분류:법전]]
[[분류:프랑크 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