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3세 (스페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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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1731년]] ~ [[1734년]] (파르마)<br />[[1734년]] ~ [[1759년]] (나폴리와 시칠리아)<br />[[1759년]] ~ [[1788년]] (스페인)
|왕가=[[부르봉 왕가]]
|왕비=[[마리아 아말리아 폰 작센 (1724년)|마리아 아말리아]]
|이전 왕=[[페르난도 6세]] (스페인)<br />[[카를 6세|카를로 6세/4세]] (나폴리와 시칠리아)<br />[[안토니오 파르네세]] (파르마)
|다음 왕=[[카를로스 4세 (스페인)|카를로스 4세]] (스페인)<br />[[페르디난도 1세 (양시칠리아)|페르디난도 4세/3세]] (나폴리와 시칠리아)<br />[[카를 6세|카를로 2세]] (파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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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왕 ==
=== 대외 관계 ===
[[1759년]] 카를로스의 배다른 형제이자 스페인 국왕인 [[페르난도 6세]]가 사망하자 카를로스는 스페인의 왕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카를로스는 나폴리와 시칠리아 왕위를 그의 셋째 아들인 [[페르디난도 1세 (양시칠리아)|페르난도]]에게 물려주었다. 스페인 왕으로서의 외교 정책은 결코 좋지 못했다. [[영국]]에 대한 적개심과 [[부르봉 왕가]]의 일원이라는 의식은 [[1760년]] 왕비 [[마리아 아말리아 폰 작센 (1724년)|마리아 아말리아]]([[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왕 [[아우구스트 3세]]의 딸)의 사망 이후 더 커졌는데, 이는 스페인이 [[프랑스]]와 함께 [[부르봉 왕가 협정]]을 체결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로 인해 스페인은 [[7년 전쟁]]에 얽매였고 이는 스페인에 큰 손해를 끼쳤다. [[1770년]]에는 [[포클랜드 제도]]를 두고 영국과의 전쟁 위기가 있었다. [[1779년]]에는 미국의 독립이 스페인 식민 제국을 뒤흔들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독립 전쟁]]에서 영국에 대항하여 [[프랑스]]와 미국 독립군을 지원하였다. 카를로스는 스페인 육군에 대해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해군 역시 약간의 배 건조를 제외하고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 내부 개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