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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南詔, [[653년]] ~ [[902년]])는 [[중국]] [[당나라]] 때 [[티베트]]에서 온 [[버마족]]이 지금의 [[윈난윈난성]](雲南) 지방에 세운 왕국이다. 조(詔)란 왕(王)의 뜻이다.
 
당시 [[쓰촨성]](四川省)의 서부에서서부 끝자락에서 [[윈난성]]에 걸치는이르는 지역에는 [[몽수]](蒙嶲)·[[월석 (나라)|월석]](越析)·[[시랑]](施浪)·[[등섬]](邆賧)·[[낭궁]](浪穹)·[[몽사]](蒙舍) 등의 [[육조 (나라)|육조국]](六詔國)이 세력을 다투고 있었는데, 그중 몽사조(蒙舍詔)가 가장 남쪽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남조(南詔)라고 한다.
 
618년 [[티베트 고원]]에서 [[토번]]이 건국되자 티베트 고원 동남부에 살던 버마족이 윈난성으로 이주하였다.
당(唐)의 정관(貞觀) 연간에는 남조가 대몽국(大蒙國)이라 칭하고, 당나라에 조공(朝貢)하였다. 그 후 대몽(大蒙)은 당과 결속하여 세력을 확장하더니 8세기 중엽 [[피라각]](皮羅閣) 때 다른 5조국(詔國)을 병합하여 738년, 6조(詔)의 통일에 성공한 후 대리(大理)에 도읍하였고 이 지방에 세력을 신장해 오던 티베트 세력을 격퇴시켰다.
 
윈난성으로 이주한 후 30여년 후인 648년 작은 소국을 건국하였고 5년후인 653년 당(唐)의 정관(貞觀) 연간에는 남조가 대몽국(大蒙國)이라 칭하고칭하여, 당나라에 조공(朝貢)하였다. 그 후 대몽(大蒙)은 당과당나라의 결속하여지원으로 세력을 크게 확장하더니 8세기50년 중엽후인 720년 무렵부터 [[피라각]](皮羅閣) 포함한 다른 5조국(詔國)을 병합하여 738년, 6조(詔)의 통일에 성공한 후 대리(大理)에 도읍하였고 이 지방에 세력을 신장해키워오던 오던 티베트[[토번]] 세력을 격퇴시켰다.
그러나 당나라와 불화(不和)가 생겨서 한때는 당나라의 토벌(討伐)을 받았으나, [[안·사의 난]](亂) 이후 당의 운남 경략(經略)이 주춤한 틈을 타서 남조는 도리어 사천(四川)까지도 세력을 뻗쳤다. 특히 8세기 말기에 [[이모심]](異牟尋)이 남조를 다스릴 때는 티베트와 결속해서 당에 침공(侵攻)하기도 하여 남조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모심은 티베트의 고압적인 태도에 불만을 품고 당에 귀순하였다. 이모심의 사후 당과 남조 사이는 여러 해 동안 불화가 계속되어 당말의 혼란기에는 당과의 교통은 완전히 두절되었다.
 
그러나 토번의 이간질로 인해 당나라와 불화(不和)가 생겨서 한때는 당나라의 토벌(討伐)을 받았으나, [[안·사의 난]](亂) 이후 당의 운남 경략(經略)이 주춤한 틈을 타서 남조는 도리어 사천(四川)까지도 세력을 뻗쳤다. 특히 8세기9세기 말기에초반에 [[이모심]](異牟尋)이 남조를 다스릴 때는 티베트와토번의 잔족 세력와 결속해서 당에당나라를 침공(侵攻)하기도 하여 남조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모심은 티베트의 고압적인 태도에 불만을 품고 당에 귀순하였다. 이모심의 사후 당과직후 남조남조는 사이는최전성기에 여러도달해서 9세기 동안중엽에는 현 [[미얀마]] 지역에 있던 [[도시국가]]인 [[퓨국]]을 급습해 퓨국을 폐허로 만들어서 무인지대로 방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9세기 중후반에는 당과 남조 사이는 불화가 계속되어 당말의 혼란기에는 당과의 교통은 완전히국가가 두절되었다유명무실화되었다.
[[902년]] [[한족|한인]](漢人) [[정매사]](鄭買嗣)가 왕위를 찬탈(簒奪)하여 남조를 멸망시키고 [[대장화]]를 세웠다.
 
당말의 혼란기인 [[902년]] [[한족|한인]](漢人) [[정매사]](鄭買嗣)가 왕위를 찬탈(簒奪)하여 남조를 멸망시키고 [[대장화]]를 세웠다.
 
== 역대 군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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