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시스 풀랑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 평가 ==
풀랑크 음악의 양면성은 그가 생존하던 때나 지금이나 할 것 없이 여러가지 오해를 낳고 있다. 매우 독실한 신자였음에도 관능을 주체하지 못했기 때문에<ref>Rorem, Ned. [https://www.jstor.org/stable/943868 "Poulenc: A Memoir"], ''Tempo'', New Series, Number 64, Spring, 1963, pp. 28–29 {{subscription}}</ref> 그의 진지한 면모가 과소평가받는다는과소 평가받는다는 인식이 있다. 또한 항상 멜로디를 고수해왔다는 이유로 당시의 신예 작곡가들에게 시대착오적이고 반동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blockquote>그는 다른 일부 예술과들과 달리 다른 사람들의 작품에 순수한 흥미를 가졌으며, 놀랍게도 그의 음악과 멀리 떨어진 작품들을 감상했다. 나는 그가 당시 그렇게 유명하지 않던 음악인 [[피에르 불레즈|불레즈]]의 《주인 없는 망치''<sub>Le marteau sans maître</sub>''》를 능숙하게 연주하던 것을 기억한다.<ref name="mt">[https://www.jstor.org/stable/949032 "Francis Poulenc"], ''The Musical Times'', March 1963, p. 205 {{subscription}}</ref></blockquote>는 증언에서 볼 수 있듯 그는 다른 작곡가에게도 높은 흥미를 가졌다. 그러나 불레즈는 2010년에 "지적으로 쉬운 길을 선택하는 사람은 항상 있다. 풀랑크는 《[[봄의 제전]]》의 뒤를 따랐는데, 이는 전혀 진보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내린다.<ref>Clark, Philip, "The Gramophone Interview&nbsp;– Pierre Boulez", ''[[그래머폰 (잡지)|Gramophone]]'', October 2010, p. 49</ref> 그러나 다른 작곡가들은 풀랑크를 더 높이 평가했는데, 실제로 스트라빈스키는 1931년에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인데, 이는 당신의 음악에서 계속해서 찾을 수 있습니다"고 편지한다.<ref>Poulenc (1991), p. 94</ref>
 
<blockquote>그는 다른 일부 예술과들과 달리 다른 사람들의 작품에 순수한 흥미를 가졌으며, 놀랍게도 그의 음악과 멀리 떨어진 작품들을 감상했다. 나는 그가 당시 그렇게 유명하지 않던 음악인 [[피에르 불레즈|불레즈]]의 《주인 없는 망치''<sub>Le marteau sans maître</sub>''》를 능숙하게 연주하던 것을 기억한다.<ref name="mt">[https://www.jstor.org/stable/949032 "Francis Poulenc"], ''The Musical Times'', March 1963, p. 205 {{subscription}}</ref></blockquote>
풀랑크는 말년에 "만일 사람들이 1950년대에도 내 작품에 여전히 흥미를 가진다면, 이는 《세 개의 무궁동》보다는 《스타바트 마테르》 때문일 것"이라 말한다. 1999년에 [[타임스]]지에 올라온 100주년 헌사는 이를 겨냥하여 그의 깊은 신앙심과 함께 그의 개구쟁이인 측면도 널리 인정받고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동시에 풀랑크는 [[갈리아인]] 특유의 에너지로 넘치며 몇 초만에 웃게도, 울게도 만들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ref>Duchen, Jessica. [http://docs.newsbank.com/openurl?ctx_ver=z39.88-2004&rft_id=info:sid/iw.newsbank.com:UKNB:EGLL&rft_val_format=info:ofi/fmt:kev:mtx:ctx&rft_dat=0F26D24C063886B8&svc_dat=InfoWeb:aggregated5&req_dat=102CDD40F14C6BDA "Plucky chicken: Sensual, witty and unfairly dismissed as lightweight"], ''The Guardian'', 1 January 1999</ref>
 
위의 증언에서 볼 수 있듯 그는 다른 작곡가에게도 높은 흥미를 가졌다. 그러나 불레즈는 2010년에 "지적으로 쉬운 길을 선택하는 사람은 항상 있다. 풀랑크는 《[[봄의 제전]]》의 뒤를 따랐는데, 이는 전혀 진보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내렸다.<ref>Clark, Philip, "The Gramophone Interview&nbsp;– Pierre Boulez", ''[[그래머폰 (잡지)|Gramophone]]'', October 2010, p. 49</ref> 그러나 다른 작곡가들은 풀랑크를 더 높이 평가했는데, 실제로 스트라빈스키는 1931년에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인데, 이는 당신의 음악에서 계속해서 찾을 수 있습니다"고 편지한다.<ref>Poulenc (1991), p. 94</ref>
 
풀랑크는 말년에 "만일 사람들이 1950년대에도 내 작품에 여전히 흥미를 가진다면, 이는 《세 개의 무궁동》보다는 《스타바트 마테르》 때문일 것"이라 말한다. 1999년에 [[타임스]]지에 올라온 100주년 헌사는 이를 겨냥하여 그의 깊은 신앙심과 함께 그의 개구쟁이인 측면도 널리 인정받고있다고인정받고 서술하고있다고 있다서술했다. 또한 동시에 풀랑크는 [[갈리아인]] 특유의 에너지로 넘치며 몇 초만에 웃게도, 울게도 만들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받았다.<ref>Duchen, Jessica. [http://docs.newsbank.com/openurl?ctx_ver=z39.88-2004&rft_id=info:sid/iw.newsbank.com:UKNB:EGLL&rft_val_format=info:ofi/fmt:kev:mtx:ctx&rft_dat=0F26D24C063886B8&svc_dat=InfoWeb:aggregated5&req_dat=102CDD40F14C6BDA "Plucky chicken: Sensual, witty and unfairly dismissed as lightweight"], ''The Guardian'', 1 January 1999</ref>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