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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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9월]]초까지 대규모의 [[불령선인]], 불순분자가 석방되었다. 그 뒤 [[미군정]] 치하에서도 구치소, 교도소로 이용되다가 [[1948년]] [[8월]] [[대한민국]]이 주권을 가지게 되면서 형무소를 [[대한민국 정부]]가 쓰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름이 [[1945년]] [[11월 21일]] '''서울형무소'''로 바뀌었는데, 이 시기에는 반민족행위자와 친일세력들이 대거 수용되었다. 또한 좌익계열의 인사들도 체포되어 수감되었는데, [[김원봉]], [[김성숙]]도 수감된 적이 있으며, [[여운형]]도 수감된 적이 있었다. 1950년대에는 수감자의 70퍼센트가 좌익인사들이었다.
[[1961년]] [[12월 23일]]에 '''서울교도소'''로 개칭되었다가 [[1967년]] [[7월 7일]]에 '''서울구치소'''로 바뀌는 기간 동안에는 [[4․19혁명]]과 [[5․16군사정변]] 등과 같은 정치적 변동에 따라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기도 했다. [[김두한]]은 [[1946년]], [[1947년]], [[1954년]], [[1958년]], [[1965년]], [[1966년]], [[1967년]]에 수감되었고 황익수 간첩사건의 주범 황익수, 박정호 간첩 사건의 주범인 박정호, 김정제 간첩 사건의 주범인 김정제, 오영근, 빨치산 간첩단 사건의 변동건, 화성 거점 무장간첩 사건의 최만복, 고정길 위장귀순 간첩사건의 범인인 고정길, 정계침투 황학현 거물간첩사건의 주범인 황학현, 텔레비젼 대남공작 간첩 사건 주범인 전근영, 자유당 정계침투 간첩 사건의 황대연, 대남간첩 탁상조 사건의 주범인 탁상조 등도 이곳에서 사형을 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회부의장을 지낸 [[조봉암]]과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도 이곳에서 사형을 당하였으며, [[1968년]]에 일어난 남조선해방전략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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