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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서부 사막 전역}}
[[파일:Tobruk 1941 - British Matilda tanks.jpg|섬네일|왼쪽|200px|[[엘 알라메인 전투]] 중 영국군 마틸다 2 보병 전차 부대.독일의 에르빈 롬멜장군은 3호전차의 주포애 끄덕안하는 마틸다2 보병용 전차를 파괴하기위해FLAK36대공포를 대전차포용으로 자주썼다.]]
북아프리카 전역은 연합군과 추축군 양자에 모두 전략적으로 중요한 전선이었다. 연합군은 [[유럽 요새]]에서요새에서 추축군을 상대로 제2 전선을 형성하기 전 단계로 간주했고, 이는 [[동부 전선 (제2차 세계 대전)|러시아 전선]]에 대한 독일군의 압박을 조금이라도 약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추축군은 [[중동]]의 풍부한 석유 자원 확보를 위해 북아프리카에서 전역을 승리로 이끌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 부분은 [[국방군 최고 사령부]]({{llang|de|Oberkommando der Wehrmacht}}, '''OKW''')의 [[알프레드 요들]]이나 [[빌헬름 카이텔]] 등은 [[에르빈 롬멜]]에게 어디까지나 방어 작전임을 누차 강조하면서 공세를 하지 말라고 했다는 점에서 과연 독일이 북아프리카 지역에 대해 그런 전략을 수립했는지, 진지하게 수행할 의사가 있었는지는 논란의 여지는 있다.<ref name="ref1">물론 [[아돌프 히틀러]]가 소련에서 [[카프카스 산맥]]을 넘어 중동까지 진격한다는 구상을 밝혀 장군들을 놀라게 하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자원이 동부 전선에 투입되고, 롬멜은 전역 내내 물자(특히 전차 및 연료) 및 병력 부족에 시달렸다는 점에서 의문의 여지가 있다. 물론 [[몰타]]와 [[영국 지중해 함대]]의 존재가 보급을 방해한 것은 사실이다.</ref>
[[파일:Advance of the Panzerjager-Abteilung 39-AC1942.jpg|왼쪽|섬네일|200px]]
 
[[9월 13일]], 이탈리아군은 [[이탈리아령 리비아]]에서 [[알렉산드리아]]와 [[수에즈 운하]]를 목표로 영국령 이집트를 향해 소규모 침공 작전을 개시했고, [[시디바라니]]에 방어 요새를 설치했다. 50만 명 달하는 이탈리아군에 비해 영국군은 3만 5000명이라는5,000명이라는 절대적인 열세였고, 그중에서도 절반이 전투 부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군은 [[컴퍼스 작전]]이라는 반격을 개시했고 [[아치볼드 웨이벌]] 장군은 이집트 국경 100km 내 지점인 시디바라니 동쪽에서 이탈리아군을 저지했다. 이 작전은 영국군의 예상보다 더 크게 성공하여 12월 [[리처드 오코너]] 중장은 시디바라니를 탈환하고 [[1941년]] 2월 초 이탈리아군을 벵가지로 격퇴시켰다.
 
한편 영국 함대와 공군도 지중해 일대를 일시적으로 장악했는데, 1940년 7월 영국 함대는 [[오랑]]과 [[알제리]]의 메르-엘-케비르에서 비시 프랑스의 선박들을 격침, 손상시키고 알렉산드리아의 비시 프랑스 선박들도 몰수했다. 몇 차례 함포전에서 패배한 이탈리아 함대는 [[타란토]]로 후퇴했고 11월 항공모함 일러스트리어스 호에서 출격한 공군기들이 이탈리아군 전함 3척과 순양함 2척을 침몰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군은 [[컴퍼스 작전]]이라는 반격을 개시했고 [[아치볼드 웨이벌]] 장군은 이집트 국경 100km 내 지점인 시디바라니 동쪽에서 이탈리아군을 저지했다. 이 작전은 영국군의 예상보다 더 크게 성공하여 12월 [[리처드 오코너]] 중장은 시디바라니를 탈환하고 [[1941년]] 2월 초 이탈리아군을 벵가지로 격퇴시켰다.
 
영국군은 800km나 진격해 이탈리아령 리비아 전역을 정복하고 전체 병력은 많으나 훈련과 화력 면에서 영국군보다 약한 이탈리아군 13만 명이 항복했는데, 그 동안 영국군의 사상자는 불과 1928명이었다1,928명이었다. 영국군은 [[엘 아게일라]]까지 진격했다.
한편 영국 함대와 공군도 지중해 일대를 일시적으로 장악했는데 1940년 7월 영국 함대는 [[오랑]]과 [[알제리]]의 메르-엘-케비르에서 비시 프랑스의 선박들을 격침, 손상시키고 알렉산드리아의 비시 프랑스 선박들도 몰수했다. 몇 차례 함포전에서 패배한 이탈리아 함대는 [[타란토]]로 후퇴했고 11월 항공모함 일러스트리어스 호에서 출격한 공군기들이 이탈리아군 전함 3척과 순양함 2척을 침몰시켰다.
 
영국군은 800km나 진격해 이탈리아령 리비아 전역을 정복하고 전체 병력은 많으나 훈련과 화력 면에서 영국군보다 약한 이탈리아군 13만 명이 항복했는데 그 동안 영국군의 사상자는 불과 1928명이었다. 영국군은 [[엘 아게일라]]까지 진격했다.
 
이탈리아군의 충격적인 패배는 알려지지 않았고, 곧 롬멜이 지휘하는 [[독일 아프리카 군단]]({{llang|de|Deutsches Afrikakorps}}, '''DAK''')이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리비아의 [[트리폴리 (리비아)|트리폴리]]로 보내졌다. 전선을 유지하라는 간단한 명령을 받았지만, 롬멜은 엘 아게일라에서 공세 작전을 발진시켰다. 최초로 투입된 독일군은 [[독일 5 경기갑 사단|5경기갑 사단]]의 수색 대대였는데, 아직 본대가 다 도착하지 않은 시점에서 반격을 개시한 수색 대대는 동원 가능한 모든 차량의 뒤에 널빤지를 달아 먼지를 일으켜 대규모 전차 부대가 있는 것처럼 위장했고, 영국군이 이에 속아 넘어갔다.<ref>당시 영국군에게는 불행히도 이탈리아군 격파의 주역들이 [[그리스]]에 파견된 뒤라, 약화된 상태였다.</ref>
한편 지중해 지역에서는 [[3월 28일]] [[그리스]] 마타판 곶 근해를 공격해 전함 1척과 5척의 구축함, 순양함을 격침시켜 이탈리아 함대를 불구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우세는 1941년 4월 독일군이 [[유고슬라비아 전선|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 공방전|그리스를 침공]]하면서 흔들리게 되었고 [[크레타 전투]]를 마지막으로 영국군의 지중해 지역의 제해권 장악은 종결되었다.
 
4월 말 독일군이 이집트 국경에 당도해 오코너 장군이 생포되고 오스트레일리아군이 [[토브룩]] 항에 고립되었다. 이에 웨이벌의 지휘 아래에 영국군이 5월에 새로운 공세를 개시했으나 실패했고 6월 2차 공세를 실시했으나 이 마저이마저 실패해 다시 한 번은 전선(戰線)은 엘 아게일라에 형성되었고 7월 웨이벌이 해임되고 [[클로드 오킨레크]]가 취임했다. 궁지에 몰린 연합군은 서부 사막군을 [[영국 8군|8군]]으로 재조직하면서 당시 영연방 국가였던 몇 개국 군대로 편성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육군 및 영국령 인도 식민지군, 뉴질랜드 육군, 남아프리카 공화국 육군을 비롯하여 [[자유 프랑스]] 측에 서는 [[마리 피에르 쾨니히]] 소장의 [[프랑스 외인부대]] 여단으로 구성되었다.
 
이궁지에 몰린 연합군은 서부 사막군을 [[영국 8군|8군]]으로 재조직하면서 당시 영연방 국가였던 몇 개국 군대로 편성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육군 및 영국령 인도 식민지군, 뉴질랜드 육군, 남아프리카 공화국 육군을 비롯하여 [[자유 프랑스]] 측에 서는 [[마리 피에르 쾨니히]] 소장의 [[프랑스 외인부대]] 여단으로 구성되었다.
 
11월 토브룩 구원에 실패했으나 [[12월 10일]] 토브룩의 포위망을 푼 뒤 [[12월 24일]] [[벵가지]]를 점령했다. 하지만 [[1942년]] [[2월 21일]] [[트리폴리 (리비아)|트리폴리]]로부터 보급을 받은 롬멜은 다시 공격했고 [[1월 28일]] [[가잘라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토브룩을 함락시킨 롬멜은 연합군을 이집트 국경까지 다시 몰아냈다. [[5월 27일]] 다시 공세를 재개했다가 6월 말 알렉산드리아와 나일 강 삼각주에서 불과 90km 떨어진 [[제1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저지당했다.
 
이 시점에서 미영 수송단의 공격으로 지중해 지역의 독일군 보급망이 파괴되고 7월 10일 오킨레크가 제한된 공세를 단행했다. 그러는 시점에서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이 8군 사령관에 취임했고 중동 지역 총사령관에는 [[해롤드 알렉산더]] 대장이 취임했다.[[8월 31일]] 롬멜이 [[엘 알라메인]]에 대한 2차 공세를 실시했으나 영국군은 [[알람 할파 전투]]와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승리했고 [[11월 5일]] 영국군은 시디바라니로 몰아냈다. 몽고메리는 추축군을 밀어붙이며 [[11월 13일]] 토브룩이 재탈환되고 트리폴리는 [[1943년]] [[1월 23일]] 함락되었다.
 
[[8월 31일]] 롬멜이 [[엘 알라메인]]에 대한 2차 공세를 실시했으나 영국군은 [[알람 할파 전투]]와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승리했고 [[11월 5일]] 영국군은 시디바라니로 몰아냈다. 몽고메리는 추축군을 밀어붙이며 [[11월 13일]] 토브룩이 재탈환되고 트리폴리는 [[1943년]] [[1월 23일]] 함락되었다.
 
== 프랑스령 알제리 및 모로코 전역 (횃불 작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