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흥 최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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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영흥 최씨(永興 崔氏)는 최천보(崔天甫)를 시조로 받들고 있다. 조선왕조실록과 열성팔고조도에 의하면 천보의 자는 지미(之美)인데, 영흥 최씨 족보에는 지미가 이름이라 한다. 족보에 의하면 최지미는 경주 최씨(慶州崔氏)의 시조인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으로 고려 때 벼슬을 지냈고 영흥백(永興伯)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손자 한기(閑奇)가 환조대왕(桓祖大王)의 빙부(聘父)가 되어 영흥백(永興伯)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경주 최씨에서 분적(分籍)하여 본관(本貫)을 영흥(永興)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선수천호(宣授千戶) [[최한기]](崔閑奇)의 원래 성은 조(趙), 이름은 조(祚)였고, [[함경도]] 지방에 거주하였다. [[이자춘]](子春)이 볼일이 있어 조조(趙祚)의 집에 갔는데, 조조의 딸이 용 두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한마리는 뱃속으로 들어가고 한마리는 뜰에 서 있는 꿈을 꾸자 그녀가 [[이자춘]]에게 시집 갔다고 한다. 조조(趙祚)는 그 복을 완전하게 받고자 성을 최(崔)씨로 바꾸고 이름도 그가 자(字)로 쓰던 한기(閑奇)로 고쳤다고 한다. 최한기의 딸은 회임한 지 14개월 만에 [[이성계]]를 낳았다고 한다. 후에 [[동북면]] 출신의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여 태조로 즉위하자 최한기가 영흥백(永興伯)에 봉해졌다. 묘소는 [[함경남도]] [[영흥군]] 덕흥면 진동리에 있다.
이성계의 어머니는 의비(懿妃)로 봉하여졌고, 뒤에 태종이 [[의혜왕후]]로 추봉하고 릉을 화릉(和陵)이라 하였다.
 
== 본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