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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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韓日關係, {{llang|ja|日韓関係}})는 현재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역사적으로 [[한국]] 지역과 [[일본]] 사이의 [[외교]], [[문화]], [[경제]] 등의 교류 관계를 가리킨다. 양 지역에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가 생긴 [[삼국 시대]](일본의 경우 [[아스카 시대]]) 이래로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 인접성으로 인해 정치적·군사·사회·문화·경제 등의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상호 지대한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러한 교류에는 [[불교]]와 [[유교]]의 전파, 농작물의 전파 등 평화적인 교류부터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 등의 유혈적 관계까지 포함된다. 두 나라의 관계와 이를 둘러싼 국제적 이해관계는 아시아사의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 되어 왔다. 일본과는 영토분쟁과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사이가 좋지 않다.
 
 
[[조선]]은 일본과의 외교에서 기본적으로 교린(交隣) 정책을 유지하였다. [[고려]] 말기부터 번번이 [[왜구]]는 [[한반도]]의 해안 지대를 침범, 약탈하였는데, 이에 조선 때에 와서는 수군의 군사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성능이 뛰어난 대포와 전함을 대량 생산하는 등 이들에 대한 소탕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약탈이 계속되자 이를 강력히 응징하기 위하여 1419년(세종 1년), 조선은 왜구의 근거지인 [[쓰시마 섬]]을 정벌하기도 했다([[대마도 정벌]]). 이에 따라 일본이 평화적인 무역 관계를 요청해 오자, 조선은 [[부산]], [[울산]] 등 일부 항구만을 제한적으로 개방하는 통상 교류를 시작하였고, [[조선 통신사]]를 파견하며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은 이후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하자 이러한 관계는 잠시 악화되기도 하였다. 근대에 들어 1868년의 [[메이지 유신]] 이후 급격히 성장한 일본과 지속적인 국가의 쇠퇴와 쇄국을 겪은 조선 간의 국력 차는 벌어졌고, 1876년 이후 [[일본제국]]은 대륙의 강대국인 청국·러시아와 맞서서 한국에 대한 침략 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결국 1905년 [[을사조약]]을 맺고 1910년에는 한국을 완전히 [[한일합병|합병]]하였다. 이후 35년간의 [[일제강점기|일본 통치]] 하에서의 강압적 식민정책에 대한 반감은 한국 내에서 반일감정과 민족주의가 발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한편 2019년에 실시된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오히려 한국 기업들은 액체 불화수소 등 상당 부분의 소재들을 국산화하는 데에 성공하여 대체적으로 안정적인 수급을 이어갔다. 반면 일본 최대의 불화수소 업체였던 [[스텔라 케미파|스텔라케미파]]는 실적이 크게 악화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ref>{{웹 인용|url=http://www.ddaily.co.kr/news/article/?no=195476|제목=수출규제 역풍 맞은 日…‘불화수소 1위’ 스텔라케미파, 영업익 급감|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ref>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요미우리 신문과 아사히 신문 등도 나서 이같은 문제 상황을 보도한 바 있다.<ref>{{웹 인용|url=수출규제 역풍 맞은 日…‘불화수소 1위’ 스텔라케미파, 영업익 급감|제목=日언론 "한국, 맹렬한 스피드로 소재·부품 脫일본 실현"|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ref>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이 제시한 수출 규제의 조건들, 예를 들어 △양국 간 정책대화를 통한 신뢰 관계 회복 △한국 측 관련 법령 개정 △수출 관리 인력 확대 등을 충족한 점을 들어 일본에게 수출 규제의 해제를 요구하였으나, 일본은 또다시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였고 결국 대한민국은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절차를 다시 밟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6월 19일 일본의 가지야마 히로시 경제산업상은 한국의 WTO제소가 유감이라고 밝혔다. 5월 30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대에 뒤처진' G7 체제에<ref>{{웹 인용|url=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00601/101310792/1|제목=“G7에 한국 왜 부르나”…日 ‘트럼프의 초대장’에 심기 불편|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ref>한국, 인도, 호주, 러시아 등을 포함시키고 싶다고 입장을 밝혔으나, 아시아 유일의 G7 지위를 잃고 싶지 않았던 일본이 한국의 참여에 대하여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에 청와대는 "일본은 세계 최악의 몰염치한 국가..." "일본은 타국에 폐를 끼치는데 익숙한나라... 그들의 뻔뻔함과 몰염치성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라는 등의 발언으로 일본의 G7가입반대를 정면으로 뚫고 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현재 코로나 19로 양국간 인적교류가 끊겨 사실상 단교된관계라 봐도 무방할정도이다.
 
== 정치 ==
| 19 || [[나가미네 야스마사]] || {{lang|ja|長嶺安政}} || 2016년 8월 25일 || 2016년 ~ 2019년 || 주[[네덜란드]] 대사, 외무심의관
|-
| 20 || [[도미타 고지]] || {{lang|ja|冨田浩司}} || 2019년 10월12월 22일3일 || 2019년 ~ 현재2021년 || 주[[이스라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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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아이보시 고이치]] || {{lang|ja|相星孝一}} || 2021년 2월 || 2021년 ~ 현재 || 주이스라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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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무성은 사의를 표한지 오랜 [[기무라 시로시치]] 주한대사 후임으로 가나야마 마사히데 당시 폴란드 대사를 전임키로 방침을 굳히고, 한국정부에 아그레망을 신청한 것으로 1968년 4월 5일 알려졌다.<ref>{{뉴스 인용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804050020920101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8-04-05&officeId=00020&pageNo=1&printNo=14300&publishType=00020|제목 = 駐韓日大使에 가네야마內定 |출판사= 동아일보 | 날짜 =1968-04-05 }}</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