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 전역"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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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말 롬멜이 개시한 첫 번째 공격에서 [[키레나이카]]에서 병력이 많이 빠진 영국군을 강타한 [[토브룩 공방전]]을 제외하면 연합군을 이집트와 리비아 국경의 항구 도시 [[살룸]]에서 압박했고, 양측은 원래 위치까지 오고 가는 공방전을 벌였다. 한편 지중해 지역에서는 [[3월 28일]] [[그리스]] 마타판 곶 근해를 공격해 전함 1척과 5척의 구축함, 순양함을 격침시켜 이탈리아 함대를 불구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우세는 1941년 4월 독일군이 [[유고슬라비아 전선|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 공방전|그리스를 침공]]하면서 흔들리게 되었고 [[크레타 전투]]를 마지막으로 영국군의 지중해 지역의 제해권 장악은 종결되었다.
 
4월 말 독일군이 이집트 국경에 당도해 [[리처드 오코너]] 장군이 생포되고 오스트레일리아군이 [[토브룩]] 항에 고립되었다. 이에 웨이벌의 지휘 아래에 영국군이 5월에 새로운 공세를 개시했으나 실패했고 6월 2차 공세를 실시했으나 이마저 실패해 다시 한 번은 전선(戰線)은 엘 아게일라에 형성되었고 7월 웨이벌이 해임되고 [[클로드 오킨레크]]가 취임했다. 궁지에 몰린 연합군은 서부 사막군을 [[영국 8군|8군]]으로 재조직하면서 당시 영연방 국가였던 몇 개국 군대로 편성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육군 및 영국령 인도 식민지군, 뉴질랜드 육군, 남아프리카 공화국 육군을 비롯하여 [[자유 프랑스]] 측에 서는 [[마리 피에르 쾨니히]] 소장의 [[프랑스 외인부대]] 여단으로 구성되었다.
 
11월 토브룩 구원에 실패했으나 [[12월 10일]] 토브룩의 포위망을 푼 뒤 [[12월 24일]] [[벵가지]]를 점령했다. 하지만 [[1942년]] [[2월 21일]] [[트리폴리 (리비아)|트리폴리]]로부터 보급을 받은 롬멜은 다시 공격했고 [[1월 28일]] [[가잘라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토브룩을 함락시킨 롬멜은 연합군을 이집트 국경까지 다시 몰아냈다. [[5월 27일]] 다시 공세를 재개했다가 6월 말 알렉산드리아와 나일 강 삼각주에서 불과 90km 떨어진 [[제1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저지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