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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1년~1943년 북아프리카전선 ===
==== 배경 ====
[[1940년]] [[6월 10일]], 서부전선에서 [[나치독일|독일]]의 공세로 성공에 힘입은 [[이탈리아 왕국|이탈리아]]는 [[영국]]과 [[프랑스]]등 연합군에 선전포고를 한다. 이탈리아는 [[1936년]]때 독일과 추축동맹을 맺어 동맹국 관계였다. 이탈리아의 참전은 이미 적기를 놓친데다가 공업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 전쟁준비도 미흡했었기에 커다란 전과가 없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동맹국 독일과 손잡은 상태에서 [[1940년]] [[9월 13일]], 이탈리아군 사령관 [[로돌포 그라치아니]]가 이끄는 20만명의20만 명의 군사들이 영국령 [[이집트]] 국경을 넘어 공격하게 된다. 이는 독일과의 상의없이 독단적으로 일으킨것이었다일으킨 것이었다.<ref name=autogenerated1>《롬멜전사록》- 리델하트 지음. 황규만 옮김.</ref><ref>알기쉬운 2차 세계대전사 2권, 이대영 지음.</ref>
 
그러나 5일 동안 영국군과의 가벼운 전투 이후 단지 90km밖에90km 밖에 전진하지 못한 채 본국으로부터 물자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어 [[시디 바라니]](Sidi Barrani)라는 곳에서 전진을 중단하게 된다. 한편, 후퇴하는 척하면서 커다란 손실없이 재정비를 완비한 영국군은 [[리처드 오코너]]의 지휘하에 대대적인 공세를 감행하여 이탈리아 원정군을 단숨에 궤멸, 단 8주 만에 이탈리아령 식민지였던 [[이탈리아령 리비아|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 (리비아)|트리폴리]] 앞까지 단숨에 점령하게 된다.<ref>KTV 다큐멘터리 '제2차 세계대전' 제6편 참조.</ref> 이탈리아군은 약 13만명가량이13만 명가량이 영국군의 포로로 잡혔으며, 400대의 전차와 3,000자루의 총들이 압수되었다. 그리고, 남은 이탈리아 군대는 뿔뿔이 흩어져 식민지령 트리폴리로 도망쳤다.<ref>리델하트.B - p179</ref>
 
그러던 중 [[1941년]] [[2월 12일]],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은 북아프리카에 공격을 중지하고 아프리카의 영국 군대를 상당수 그리스의 전장으로 옮기도록 명령한다. 그때 당시 동시에 이탈리아는 또다시 독일과의 상의없이 [[알바니아]]지역을 통해 [[그리스]] 침공을 했었기 때문에 북아프리카에 있는 영국군은 대거 그리스전선으로그리스 전선으로 이동, 더이상의 진격을 멈추었다.
 
한편, 북아프리카 전선과 그리스 전선에서 번번이 패퇴를 거듭하고, 이러한 위기상태에 빠진 이탈리아는 동맹국 독일에 지원요청을 한다. 이에 독일은 제15 기갑사단과 제21 기갑사단 등을 조직하고, 에르빈 롬멜을 지휘관으로 임명하여 북아프리카 전선으로 파견하게 된다. 롬멜은 북아프리카 전선 파견하기 6일전이던6일 전이던 [[2월 6일]],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히틀러]]로부터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군의 전진을 저지시키라.'는 명령을 받는다. [[아돌프 히틀러|히틀러]]는 '[[이탈리아]]가 [[이탈리아령 리비아|식민지령 리비아지역]]을 잃게 되면, 이탈리아 총리 [[베니토 무솔리니]]의 정치적 입지가 어려워져, 독일-이탈리아 축이 위협 당할것이다.'라고 판단했었다판단했다.
 
==== 1941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