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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멜은 영국군에 비해 숫적으로 열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꾀를 내어 '위장 전차'로 전차수를 증강, 자신이 이끄는 아프리카 군단의 대대적인 기습 공격과 공세는 영국군을 혼란케 만들어 전세를 뒤집는데 충분했다. 예를 들어, 롬멜은 80대의 전차로 적군 영국군의 전차 300대에 맞서 대승을 거두는데, 롬멜은 적군에 비해 열세인 상황속에서 자동차에 널판지를 붙여서 전차로 보이게 하는 이른바 '위장 전차'를 만들어 병력 증강하는듯이 꾀를 내는 기만술을 썼으며, 기존의 인습적인 전술에서 벗어나 미리 88mm포를 고정 설치하고 경전차로 이용하여 적 전차를 유인, 고정된 88mm포로 무찌르는 이른바 '유인전술'방식으로 무찔러갔다. 사막전의 전문가인 영국군 지휘관 [[리처드 오코너]] 육군 소장은 독일 아프리카 군단의 공격 1주일만에 포로로 잡히고, 아프리카 군단은 솔룸까지 2주 만에 진격하며 영국군을 초토화시키는등 전과를 올렸다.<ref>리델하트 - p189</ref>
 
독일 아프리카 군단은 후퇴하는 영국군을 계속 추격하여 [[1941년]] 6월에 [[토브룩]] 요새까지 도달했다. 후퇴를 거듭하는 영국군은 [[나일 강]]까지 후퇴를 고려했었으나,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의 엄명에 의해 영국군은 토부룩토브룩 요새를 지키기로 결정했다. 독일 아프리카 군단과 이탈리아 군대의 추축군은 토부룩 요새를 수차례 공격하였으나, 공격에서는 큰 피해를 입고 성공하지 못했으며, 물자 보급에서 큰 곤란을 겪기 시작했다. 당시, [[아돌프 히틀러|히틀러]]는 '더 많은 전차와 무기, 보급품을 보내달라.'는 롬멜의 요구를 무시하면서, 히틀러는 '롬멜이 지금까지처럼 최소한의 병력과 장비로 계속 잘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전진하도록 밀어붙이면서도 충분한 장비를 갖춰주지 않는 히틀러 밑에서 롬멜의 뛰어난 전략과 전술만으로는 밀고 나가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독일 기갑 군단 병력을 거의 소모하고, 단 70대의 전차만으로 아프리카 군단의 병력을 증강할 지원군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반면, 추축군에 의해 [[토부룩]]토브룩 요새에서 포위당한 채로 있는 영국군과 호주,뉴질랜드 연합군은 끊임없이 끈질긴 저항으로 '토부룩의 들쥐'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들 영국, 호주, 뉴질랜드군 연합군은 11월까지 계속된 독일군의 포위 공격을 버텨낸다. 한편, 영국군은 포로로 잡힌 [[리처드 오코너]]를오코너를 대신하여 [[클로드 오친레크]] 육군 대장이 중동 파견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지휘를 하여 [[11월 18일]], 영국군은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하였고,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은 [[12월 7일]]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 군단은 '마르사 엘 브라가' 까지 후퇴를 거듭하게 된다. 그러나, 오친레크의 공세는 다음해 [[1942년]] [[1월 21일]]에 막을 내리게 된다.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은 후퇴한 뒤에 재정비를 갖추고 역습하여 영국군의 공세를 막아내어 영국군을 다시 토부룩까지토브룩까지 밀어내었다.
 
==== 1942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