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빈 롬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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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틀러 암살미수 연루 ===
{{참고|히틀러 암살미수 사건}}
그는 [[1944년]] 봄, 전 육군 참모총장 [[루트비히 베크]] 육군 상급대장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결성된 히틀러 반대파에 가담한 롬멜의 친구 몇 명이 그에게에르빈 롬멜에게 접근하여 '히틀러가 축출된 뒤에는 롬멜이 국가 원수직을 맡아야 한다.'고 제의했다. 그는롬멜은 그 제의를 거절하지 않았지만, 독일을 전쟁으로부터 구출하려는 공모자들은 히틀러 암살계획을 롬멜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들은 '롬멜이 정치적인 목적의 살인을 옳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f>마우리체 필립 - p297</ref> 롬멜은 '히틀러가 내리는 일체의 처형명령'을 한결같이 무시했었다. [[1944년]] [[6월 6일]]에 연합군의 침공이 시작되었을때, 롬멜은 히틀러에게 '전쟁은 패했다.'는 것과 '연합국들과 강화를 맺어야한다.'는 것을 수차례 지적했었다. 히틀러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롬멜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1944년]] [[7월 17일]], 연합군의 저공비행 습격으로 중상을 입어 롬멜은 병원으로 입원하고 난 후 며칠 뒤, 그 사이에 [[7월 20일]], 커다란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7월 20일 음모|히틀러 암살미수 사건]]이었는데, 독일군 장교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가 총통 [[아돌프 히틀러|히틀러]] 암살을 하기 위해 동프로이센 지역의 [[라슈텐부르크]]에 위치한 '볼프샨체'(총통지휘부)회의에 참석하여 회의실에 폭탄이든 가방을 놓고 히틀러를 폭살시키고, 나치스 주요인사들 체포하여 나치스 정부를 전복시키는 쿠테타를 계획했던 사건을 일으킨다. 그러나, 히틀러는 가벼운 경상만 입은 채로 살았고, 쿠테타를 일으켰던 장교들 및 주요 인사들을 체포하여 대규모 숙청을 한다. 결국 히틀러 암살미수 사건은 실패로 끝났으며, 재판과 조사과정에서 '롬멜이 히틀러 암살에 가담한 음모자'들과 접촉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롬멜도 역시 '히틀러 암살미수 사건'에 연루된다.
롬멜은 '히틀러가 내리는 일체의 처형명령'을 한결같이 무시했었다. [[1944년]] [[6월 6일]]에 연합군의 침공이 시작되었을때, 그는 히틀러에게 '전쟁은 패했다.'는 것과 '연합국들과 강화를 맺어야한다.'는 것을 수차례 지적했었다. 히틀러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롬멜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1944년]] [[7월 17일]], 연합군의 저공비행 습격으로 중상을 입어 롬멜은 병원으로 입원하고 난 후 며칠 뒤, 그 사이에 [[7월 20일]], 커다란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7월 20일 음모|히틀러 암살미수 사건]]이었는데, 독일군 장교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가 총통 [[아돌프 히틀러|히틀러]] 암살을 하기 위해 동프로이센 지역의 [[라슈텐부르크]]에 위치한 '볼프샨체'(총통지휘부)회의에 참석하여 회의실에 폭탄이든 가방을 놓고 히틀러를 폭살시키고, 나치스 주요인사들 체포하여 나치스 정부를 전복시키는 쿠테타를 계획했던 사건을 일으킨다. 그러나, 히틀러는 가벼운 경상만 입은 채로 살았고, 쿠테타를 일으켰던 장교들 및 주요 인사들을 체포하여 대규모 숙청을 한다.
 
결국 히틀러 암살미수 사건은 실패로 끝났으며 재판과 조사과정에서 '롬멜이 히틀러 암살에 가담한 음모자'들과 접촉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도 역시 '히틀러 암살미수 사건'에 연루된다.
 
== 죽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