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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백제'''(百濟
==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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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서|진서(晉書)]]》에 따르면, 백제가 전성기였던 4세기에 근초고왕은 [[동진]]에 사신을 보내서 조공하였다<ref>[[:s:zh:晉書/卷009|晉書/卷009]], 簡文皇帝...咸安...二年春正月辛醜,百濟、林邑王各遣使貢方物。... 六月,遣使拜百濟王餘句爲鎭東將軍,領樂浪太守。</ref> [[동진]]과 동맹을 맺어, [[고구려]]에 투쟁하려고 하는 백제의 사대주의적 외교는 침류왕 대에도 계속되었다. 침류왕 원년 7월에도 백제는 동진에 조공하였다. 게다가 음력 9월에 [[동진]]에서 호승(胡僧) [[마라난타]]가 오자, 궁중에 머물게 하고 하늘처럼 대접하였다. 470년, [[송 (남조)|송 왕조]] 시기에도 사신을 보냈으며, 472년에는 [[북위 (북조)|북위]]에 처음으로 사신을 보냈다. 그리고 무령왕과 성왕은 [[양 (남조)|양나라]]에 여러 차례 조공을 보내는 대가로 양나라 귀족 칭호를 하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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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가 중국의 [[랴오시|랴오시 지방]]을 점령하고
일반적으로 역사학계에서는 백제의 요서진출을 부정하는 것이 정설이며,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견해도 상업적·군사적인 일시적 진출로 본다.<ref>유원재, 〈"백제 략유(略有)요서" 기사의 분석〉, 《백제사의 이해》, 학연문화사, 1991</ref> 한편으로 [[환단고기]] 등의 [[의사 역사학]]을 주장하는 재야사학자들은 백제의 대륙 진출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며 그 강역에 대해서도 랴오시 지방뿐 아니라 산둥 반도 등 중국 곳곳으로 과장되게 비정하나 역사학계에서는 인정되지 않는다.
또한 [[삼국사기]], [[남제서]] 등에는 490년에 위나라(북위)
▲대륙 정복 시기에 대한 문제도 논란의 대상이 된다. 《송서》, 《양서》 등의 기록에 따르면 대륙 정복 시기는 [[진 (위진남북조)|진]](晉) 말기로, 고구려가 요동을 점령한 이후라고 한다. 고구려가 요동을 명백하게 점령한 시기는 [[광개토왕]] 때(391년~413년)의 일로 이 시기의 백제는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크게 패하여 58개 성을 빼앗기는 등 중국을 다스릴 여력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고구려가 385년 일시적으로 요동을 점유하였을 때 백제의 요서 진출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ref name=autogenerated1> 한편 요서 경략 시기에 대해 [[신채호]]는 근구수왕 때, [[정인보]]는 살해당한 책계왕·분서왕 때, 김상기·김철준은 근초고왕 때로 보는 등 매우 다양한 가설들이 제시되고 있다. </ref>
▲또한 [[삼국사기]], [[남제서]] 등에는 490년에 위나라(북위)의 기병이 백제를 점령했으나 다시 막아낸 기록이 남아 있어 이를 근거로 일각에서는 이 시기까지도 대륙백제가 요서지방이나 기타 해외에 드넓은 영토를 통치하고 있었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 기록의 위나라를 고구려의 오기로 보아 인정하지 않는 편이며, 같은 기록에 백제 측의 전공으로 '선박을 쳐부순 것(拔臺舫)'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위나라가 실제로 함대를 보내 대륙백제를 침공해 왔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 등 논란이 매우 많다.<ref>이문영, 《만들어진 한국사》, 파란미디어, 2010, 237쪽</ref>
=== 왜국과의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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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umida Hatiman Mirror.JPG|섬네일|200px|[[스다하치만 동경]]]]
현존하는 [[스다하치만 신사 인물화상경|인물화상경]](5~6세기)은 [[백제 무령왕]](재위 501년~523년)이 [[게이타이 천황]](재위 507년 ~ 531년)에게 선물로 보낸 거울인데, 이것은 백제와 [[왜]]의 친밀한 사이를 증명한다. 무령왕은 [[513년]] 오경박사 단양이(段楊爾)<ref>{{서적 인용 |제목= [[일본서기]] | 저자= |연도= 720 |장= [[:s:zh:日本書紀/卷第十七|卷第十七 繼體天皇]] |인용문=七年夏六月 ... 貢五經博士段楊爾。}}</ref>
[[파일:Prince Shotoku.jpg|섬네일|200px|백제로부터 불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쇼토쿠 태자]]와 동생(왼쪽: 에구리 황자)과 장남(오른쪽: 야마시로 황손),8세기 목판 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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