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교회 대분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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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와 아비뇽의 교황은 자신들에게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서유럽 각국은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지지하는 교황을 달리하였다. 두 명의 교황이 인사권을 남발하자 각 지역 교회는 두 명의 대주교, 두 명의 수도원장, 두 명의 본당신부를 갖게 되었다. 이들은 서로 상대방을 파문하였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서유럽의 모든 성직자와 신자들이 파문 상태에 놓이게 됐다.<ref name="카톨릭 신문" /> 교회와 수도원과 가정의 평신도들까지 지지하는 교황이 달랐으며 이로 인해 유럽사회에 일대 대혼란이 펼쳐졌다.
 
사태를 수습하고자 피사공의회(1409년)가 소집되어 두 교황을 폐위하고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였으나 로마와 아비뇽 교황이 공의회의 결정을 인정치 않으므로 인해 사상 초유에 합법적인 3명의 정통 교황이 존재하는 상황이사태가 펼쳐졌다벌어졌다. 이러한 혼란은 최종적으로 [[콘스탄츠 공의회]](1414~1418)에서 해결되자해결되었으며 이로인해 공의회 수위설이 부상하였으며부상하면서 교황의 권위는 약화되었다.
 
== 역사적 배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