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즈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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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 느헤미야 서는 원래 두루마리로 엮어진 한 개의 문서였다. (느헤미야 3:32, 각주) 후에 유대인들은이 두루마리를 나누어 각각 첫 번째와 두 번째 에스라라고 불렀다. 현대 [[히브리어 성경]]은 현대 다른 성경 번역과 마찬가지로 이 두 권의 책을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부른다. 에즈라 서 몇 부분(4:8~6:18과 7:12~26)은 [[아람어]]로 기록되었고, 대부분은 히브리어인데, 에즈라 자신은 두 언어에 능숙했다.
 
에즈라는 바벨론에 살고 있었다. [[페르시아 제국|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칠년 (기원전 457 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라고 에스라를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많은 포로된 유대인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에스라는 그곳의 유대인들이 유대인이 아닌 여자와 결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절망 속에서 자신의 옷을 찢고,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하며, 동족 몇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죄 많은 결혼 생활을 해소함으로써 공동체를 정화하려고 했다 . 몇 년 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는 도시 벽을 재건하는 임무를 지닌 주지사로 예루살렘에 느헤미야(유대인 귀족 집안이면서 왕의 측근이었다)를 보냈다. 성벽이 완성되자, 느헤미야는 에스라에게 모세 율법 (토라)을 모은 책을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읽게했고, 백성과 제사장은 율법을 지키고 모든 다른 민족들과 섞이지 않겠다는 언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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