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교회 대분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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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스탄츠 공의회 ===
3명의 교황이 존재하는 이상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황제 지기스문트의 요청을 알렉산데르 5세의 후임인 요한 23세(재위 1410~15)가 수용하여 독일 콘스탄츠에서 공의회가 열렸다.<ref>[네이버 지식백과] 콘스탄츠 공의회 (종교학대사전, 1998. 8. 20.)</ref> 공의회는 1414년 11월 5일에 첫 회의가 열렸고 1418년 4월 22일까지 계속되었는데 300명 이상의 주교, 100명 이상의 대수도원장, 다수의 고위 성직자들, 신학자, 교회법학자, 통치자들이 참석하였다.<ref>G.F.영 <메디치 가문 이야기> 현대지성 2020.7.9, p53</ref> 공의회를 소집한 요한 23세 교황이 자신에게 적대적 분위기로 회의가 진행되자 1415년 3월 20일 도주하였고<ref>존 줄리어스 노리치 <교황연대기> 바다출판 2014.8.5 p451</ref> 지기스문트 황제가 회의를 주관하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공의회에서는 3명의 교황 그레고리오 12세, 베네딕토 13세, 요한 23세을 모두 폐위시키고 1417년 11월 새로운 교황에 로마의 명문가 출신의 추기경 코론나를 [[교황 마르티노 5세|마르티노 5세]](재위 1417~31)로 선출했다. 이로써 서유럽 교회의 대분열을 종식시키고 난국이 수습되었다.
 
== 영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