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부소산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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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부소산성'''(扶餘 扶蘇山城)은 백제 사비도성의 배후산성과 왕궁성으로 추정되는 유적이다. 지난 1980년부터∼2002년까지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연차 발굴조사를 진행하여 [[백제]]의 마지막 왕성으로 ~[[삼국시대조선]]에는 '''사비성'''시대에 축조한 성벽, 백제 시대 수혈 건물지와 목책열, 조선시대 군창지 등을 확인하였다.<ref>{{웹 인용|url=https://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jsessionid=VbJ9UewP6RViwWUu1Q1lCv9tafSG17N4eiND01raAXphNgPLVXzyq5fvg3aIuzAA.cha-was02_servlet_engine1?newsItemId=155702438&sectionId=b_sec_1&pageIndex=1&pageUnit=10&strWhere=&strValue=&sdate=&edate=&category=&mn=NS_01_02|제목=(泗沘城국영문 동시 배포)으로 불렸다.부여 부소산성에서 ‘乙巳年(645년 추정)’명문 토기 출토|날짜=2020-12-08|웹사이트=[[문화재청]]}}</ref> [[부여군]] [[부여읍]]의 [[서쪽]]에 [[금강]]을 낀 부소산 속에 있으며, 둘레는 대략 2.2km, 면적은 약 74만m<sup>2</sup>에 달한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5호로 지정되었다.
 
부소산성은 부소산 정상에 [[테뫼식 산성]]을 쌓은 후, 주변을 [[포곡식 산성|포곡식]]으로 쌓은 복겹 산성이다. 부소산성 주변에는 [[청산성]]과 [[청마산성]]이 있으며, [[남쪽]]에는 [[성흥산성]]의 지원을 받았다. 과거의 군수품 창고 터 등이 남아 있으며, 그 외에도 의자왕의 궁녀들이 자살했다는 [[낙화암]]과 [[고란사]] 등이 있다.
 
== 개요 ==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으로 백제의 도성(都城)이다도성이다. 삼국사기』「》〈백제본기에는 사비성·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통일신라 시대부터는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른다.
 
[[웅진]]에서 [[사비]]로 수도를 옮기던 [[백제 성왕]] 16년(538)에 왕궁을 보호하기 위해 이중(二重)의 성벽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성왕]] 22년(500)경에 이미 산 정상을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 있던 것을 [[백제 무왕|무왕]] 6년(605)경에 지금의 모습으로 바꾼 것으로 짐작되어 백제 성곽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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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문헌 ==
* {{문화재청 문화재|13,00050000,34|부여 부소산성}}
*{{공공누리 제1유형 인용|문화재청}}
 
{{충청남도의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