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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관계 ==
** 남편 : 추존 신흥대왕의흥대왕(興大王) [[김효종김인경 (신라)|김효종김인경]](金孝宗仁慶)
* 아버지 : [[헌강왕]](憲康王) 김정(金晸)
** 아들 : 추존 신흥대왕(神興大王) [[김효종 (신라)|김효종]](金孝宗)
* 어머니 : 의명왕태후(義明王太后)
*** 아들손자 : [[경순왕]](敬順王) 김부(金傅)
** 남편 : 추존 신흥대왕(神興大王) [[김효종 (신라)|김효종]](金孝宗)
**** 증손자 : 역사에 실명(失名), 후대에 [[마의태자]](麻衣太子)
*** 아들 : [[경순왕]](敬順王) 김부(金傅)
**** 손자증손자 : 역사에 실명(失名), 후대에문헌에 [[마의태자김덕지]](麻衣太子金德摯), 승명 [[범공]](梵空)
**** 손자 : 역사에 실명(失名), 문헌에 [[김덕지]](金德摯), 승명 [[범공]](梵空)
 
=== 첫째 왕손왕증손 ===
사기(史記)에 첫째 왕자는 [[935년]] 10월 부왕 [[경순왕]]이 신라의 천년 사직을 고려에 양국(讓國) 하려하자 불가함을 간(諫)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통곡을 하면서 왕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산길을 따라 [[개골산]](皆骨山)으로 들어가 바위 아래에 집을 짓고, 삼베옷을 입고 초식(草食)하다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이름은 사서(史書)에 전하지 않으며, 후대에 마의(麻衣)를 입고 살았다 하여 [[마의태자]](麻衣太子)라 부른다.
 
=== 둘째 왕손왕증손 ===
둘째 왕자도 부왕 [[경순왕]]에게 항복하지 말 것을 형과 함께 극력 간(諫)하였으나 듣지 않으매, 처자(妻子)를 버리고 형 [[마의태자|태자]]와 함께 [[금강산|개골산]](皆骨山)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후 [[화엄종]](華嚴宗)에 귀의하여 법수사(法水寺)와 [[해인사]](海印寺)에 드나들며 도(道)를 닦으며 망국(亡國)의 한(恨)을 달랬는데 승명이 [[범공]](梵空)이라 한다. 이름은 사서(史書)에 전하지 않으나, 문헌에 [[김덕지]](金德摯)라 한다. 이들 후손들은 [[울산 김씨]]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ref>1561년 고암 양자징(梁子澂) 찬한 『하서 [[김인후]] 가장』에 시조 [[김덕지]](金德摯)는 신라 [[경순왕]] 왕자로 학성부원군(鶴城府院君)에 봉해졌다고 함.</ref><ref>1682년 우암 [[송시열]] 찬(撰)한 『하서 [[김인후]] 신도비명』에 시조 [[김덕지]](金德摯)는 [[경순왕]] 별자(別子)로 학성부원군(鶴城府院君)에 봉해져 울산김씨 시조가 되었는데 학성(鶴城)은 울산(蔚山)의 별호라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기록</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