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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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공비 요원 중 총책임자인 김동원 대좌의 존재로 인해 이 임무가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임무임을 알 수 있는데 김동원 대좌는 해상처장이며 그 해상처장이기 이전에 이미 '''공화국 2중 영웅'''으로 장래가 매우 촉망되는 고위 군관이었다. 참고로 공화국 영웅은 북한의 [[핵심계층]] 중에서도 아무나 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위치에 있는 직함이며 공화국 영웅 1회 수여 하나만으로도 바로 신분이 [[병사 (군사)|전사]]에서 [[장교|군관]]으로 변경될 정도이다. 이 대단한 공화국 영웅 칭호를 두 번이나 수여한 인물이 김동원 대좌이다.
 
이 임무의 진짜 목적은 당시 대한민국의 대통령인 [[김영삼]]을 암살하는 것이다.<ref>[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81968 생포간첩 이광수 "침투 목적은 대통령 암살"]</ref> 이 무장공비들은 [[1996년]] [[10월 7일]]에 [[춘천시]]에서 [[1996년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을 한다는 첩보를 입수했으며 그 전국체전 개막식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연설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다는 것까지 알아낸 상태였는데 그래서 이들 무장공비들은 강릉까지 잠수함으로 침투한 이후 강릉에서 춘천까지 도보로 이동 후 춘천에서 민간인으로 위장한 뒤 전국체전 개막식에 참석해서 [[김영삼]] [[대통령]]을 저격할 계획이었다. 도보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작전 일자보다 3주일 정도 전인 [[1996년]] [[9월 13일]]에 [[원산항]]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원래 항해요원은 전투요원을 강릉에 상륙시킨 뒤 복귀하는 것으로 임무가 완료되었으나 그들이 탑승한 잠수함이 강릉에서 정박이 아닌 좌초를 당한 탓에 원산항으로 되돌아갈 방법이 아예 없어졌으며 이로 인해 항해요원들도 작전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결국 전투요원들이 항해요원들을 총살시키게 되었다.
 
1996년 2월 초, 동해에서 한국과 미국의 합동 훈련이 실시되었다.<ref name="한겨레_1">한미해군 연합 기동훈련, 《한겨레》, 1996.2.10</ref> 4월 4일, 북한은 남한 내에서 시행된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불만을 표하면서, 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담화를 통해 비무장지대와 관련된 규정들을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수일 간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벌였다.<ref name="동아_2">北"비무장지대 불인정", 《동아일보》, 1996.4.5</ref><ref name="한겨레_2">북한이 문제삼고 있는'남한 군사활동', 《한겨레》, 1996.4.8</ref> 일부에서는 이를 북한의 식량난으로 인하여 북한 붕괴의 가능성과 흡수통일이 논의되고 있는 것에 대한 북한내의 위기의식이 표출된 것으로 보고, 확전의 위험성을 예측하였다.<ref name="동아_3">북한내부의 최신정보, 《동아일보》, 1996.4.12</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