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산드로 파르네세 (추기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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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대기 ==
[[발렌타노]](지금의 [[비테르보 현]])에 태어난 그는 [[볼로냐]]에서 공부했으며 파르마 교구의 행정관으로 임명되었다. [[1534년]] [[12월 18일]] 그는 교황 바오로 3세에 의해 산탄젤로 직함의 [[추기경|부제급 추기경]]으로 [[서품]]되었다. 알레산드로 파르네세는 [[신성 로마 제국]] 교회의 부대법관, 티볼리의 장관,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대성전]]의 주임 사제, [[성 베드로 대성당대성전]]의 주임 사제, [[아비뇽]]의 행정관 등 기타 다른 많은 관직과 성직록을 받았다. [[1536년]]에 그는 몬레알레의 주교가 되었으며 [[1552년]]에는 그곳에 [[예수회]] 대학을 세웠다. 1538년에는 마사의 교구장, 1553년에는 투르와 카오르의 대교구장이 되었다. [[1580년]]에는 베네벤토의 교구장, 오스티아의 주교급 추기경, [[추기경회의]]의 수석 사제 등이 되었다.
 
또한 그는 [[교황 특사]]가 되어 끊임없이 서로 적대한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5세]]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를 중재하여 두 사람 사이에 평화를 가져왔다. [[1546년]]에 그는 [[슈말칼덴 동맹]]을 배척한 카를 5세를 지원하기 위해 교황군을 이끌었다. 1580년의 [[콘클라베]]에서 그는 교황직의 강력한 후보자가 되었지만 낙선하고 말았다. 한편 건축 사업에 몰두하였던 파르네세 추기경은 [[로마]]에 [[제수 성당]], [[빌라 파르네세]], [[파르네세 궁전]]과 같은 건물들을 짓거나 성당들의 보수를 지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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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가이기도 했던 알레산드로 파르네세는 개인적으로 고대 이래의 로마 조각물들을 모아 정리하는 작업을 실행하였다. 이것들은 [[부르봉-파르마 가|부르봉-파르마]] 왕들이 상속받았다가 넘어간 뒤 오늘날에는 대부분이 [[나폴리]]에 있다. 그는 또한 살아있는 예술가들의 훌륭한 후원자이기도 했다. 그는 [[티치아노 베첼리|티치아노]],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그린 중요한 그림들을 소장하였다.
 
알레산드로 파르네세는 [[1589년]]에 예순아홉 살의 나이에 죽은선종하였으며, 뒤에시신은 제수 성당의 중앙 [[제대]] 앞에 매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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