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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고종|고종]] 무렵에 중국 북방에서 [[테무친]]이 [[몽골]]을 통일하고 [[칭기즈 칸]]의 즉위가 이루어지고, [[금나라]]의 국력을 약화시켰다. 그러자 [[거란]]은 [[후요]](대요수국)를 건국하지만, 몽골의 침략으로 [[요동]]의 근거지를 버리고 [[압록강]] 쪽에 밀집하게 되었다. 거란은 이렇게 하여 [[의주]]와 [[삭주]]를 휩쓸며 약탈을 일삼았다. [[최충헌]]은 수수방관하여, 백성들은 모두 정처 없는 피난을 떠나야만 했다. 이때 압록강에서 살아 [[고리짝]]을 만드는 [[양수척]]이라는 [[천민]]들이 있었고, [[자운선]]이라는 처녀 덕에 세금까지 내면서 고난을 면치 못했다. 이 곳에 거란이 침입하자, 양수척들은 개경으로 가는 길과 각각의 [[성 (건축)|성]]에 각각의 군사 수를 알려주면서 앞잡이 노릇을 했다. 이렇게 거란군은 물밀듯이 쳐들어 왔고, 보고를 받은 [[최충헌]]은 [[상장군]] [[노원순]]을 [[중군 병마사]]로 하고 같은 상장군 [[오응부]]는 [[우군 병마사]]로 하며 [[대장군]] [[김취려]]를 [[후군 병마사]]로 임명했다. 다행히 김취려의 활약으로 거란군을 몰아냈다. 그러나, 여진과 합동하여 쳐들어 왔다. 김취려와 [[조충]]의 고려군에 밀린 거란군은 강동성으로 도주했고 이 상황에서 [[몽골]]가 도와주겠다며 협조하려 했다. 그리하여 [[고려 고종|고종]] 6년(서기 1219년)에 몽골군과 함께 거란의 항복을 받았다. 그 해 [[가을|9월]] 최충헌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몽골군의 협조는 후에 원의 지배로 이어진다.
 
== 최우 시대정권 ==
=== 최우의 선심 ===
[[최우]]는 민심을 생각하여, [[최충헌]]이 불법으로 약탈한 [[논]]•[[밭]]•[[노비]] 등을 모두 돌려주고 최충헌이 소유한 [[국보]]를 [[고려 고종|고종]]에게 바치는 등의 선심을 베풀었다. 또한, [[무신]]들의 정권을 약화시키기 위해 [[문신]]들을 많이 등용하는 등 나라의 기강을 잡기 위해 애썼다. 사실 목적은 권력을 오래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