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살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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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box royalty|mother=[[Maacah|Maacah bat Talmai]]|출생지=[[이스라엘 왕국]] [[유다 지파|유대 지방]] [[헤브론]]|호칭=이스라엘 왕국의 왕자|자녀={{Collapsible list
{{출처 필요|날짜=2012-11-24}}
| titlestyle = font-weight: normal; background: inherit; text-align: left;
[[파일:Gustave dore bibel death of absalom.jpg|섬네일|오른쪽|200px|압살롬의 암살, 귀스타브 도어의 작]]
| title = 3남 1녀<ref>[[사무엘하]] 14장 27절</ref>
'''압살롬'''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연합 이스라엘 왕국]]의 2대 왕 [[다윗]]의 셋째 아들이다. 아버지 [[다윗]]에 대항하여 [[압살롬의 난]]을 일으켰으나 패배해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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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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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 다말}}|매장지=에브라임 숲|그림=Muerte de absalon en el CESEDEN (cropped).jpg|그림설명=압살롬의 죽음 ([[코라도 지오퀸토]], 1762년)|아버지=[[다윗]]|사망지=[[이스라엘 왕국]] [[에브라임 숲 전투|에브라임 숲]]}}
'''압살롬'''({{lang-he|אַבְשָׁלוֹם}}, "평화의 아버지")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연합 이스라엘 왕국]]의 2대 왕 [[다윗]]의 셋째 아들이다. 아버지 [[다윗]]에 대항하여 [[압살롬의 난]]을 일으켰으나 패배해 살해당했다.
 
== 성경에서 ==
압살롬은 [[다윗]]이 [[헤브론]]에 있을 때 [[그루스]]의 왕 [[탈마이]]의 딸 [[마아카]]에서 태어난 아들로 알려져 있다. 이후 다윗의 장남이자 형인 [[암논]]이 자신의 누이 [[타마르]](다말)를 [[강간]]하자 이에 대한 복수로 2년 후 에프라임 근처 바알 하초르에서 자신이 주최한 연회에서 부하들을 시켜 [[암논]]을 살해했다.
=== 어린 시절 ===
압살롬은 [[다윗]]이 [[헤브론]]에 있을 때 [[그술]]의 왕 [[탈매]]의 딸 [[마아가]]에서 태어났다.<ref>[[사무엘하]] 3장 3절</ref> 그리고 어릴 때 왕이 된 아버지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이사와 거기서 자랐다. 3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두었는데, [[사무엘하]] 18장에서 아들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아들들이 모두 죽었거나{{sfn|Kirkpatrick|1905|p=173}} 그 이후에 태어난 것으로 본다.<ref>{{Cite book|url=https://www.studylight.org/commentaries/eng/mhm/2-samuel-14.html|title=An Exposition of the Old and New Testament|last=Henry|first=Matthew|authorlink=Matthew Henry|year=1853|publisher=[[Henry George Bohn]]|quote=It is probable that it was a good while before he had a child. Then, despairing of having one, he set up the pillar (2 Samuel 18:18) to bear up his name, but afterwards he had three sons and one daughter (2 Samuel 14:27). Or perhaps these sons, while he was hatching his rebellion, were all cut off by the righteous hand of God, and he thereupon set up that monument.}}</ref>
 
다말을 통해 둔 손녀 [[마아가]]는 이후 [[르호보암]]의 부인이 되어 [[아비얌]]을 낳는다.
그리고 2년 동안 [[그루스]]의 왕 [[암미훗]]의 아들 [[탈마이]]에게 있다가 [[요압]]의 권유로 다시 궁전에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다윗]]과 더불어 대리고 오자고 권유한 [[요압]]조차 2년간 압살롬을 무시하고 방치하자 이에 분하여 [[요압]]의 밭에 불을 질렀고 화가 난 [[요압]]에게 아버지를 보고싶다 청하여 4년이 지나서야 다윗을 만난다. 이후 그는 군략가인 [[아히토펠]], 군사령관 아마시아 등을 포섭하며,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등 민심을 장악하고, [[반란]]을 준비했다.
 
=== 암논을 살해하다 ===
4년 후 압살롬은 드디어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고 다윗은 [[요르단 강]]을 건너 마하나임 지역으로 피신했다. 압살롬은 [[아히토펠]]의 말을 듣지 않고 다윗이 심어놓은 심복 [[후사이]]의 의견에 따라 다윗이 재정비할 시간을 허용하다가 대패. 끝내 [[다윗]]이 총지휘하는 요압, 아비새, 잇다이의 군대에 의해 패배하여 도망가다가 [[향엽나무]]에 머리가 걸려 매달렸다.
압살롬은 [[다윗]]이 [[헤브론]]에 있을 때 [[그루스]]의 왕 [[탈마이]]의 딸 [[마아카]]에서 태어난 아들로 알려져 있다. 이후 다윗의 장남이자 형인 [[암논]]이 자신의 누이 [[타마르다말]](다말)를 [[강간]]하자 이에 대한 복수로 2년 후 에프라임에브라임 근처 바알 하초르에서바알하솔에서 자신이 주최한 연회에서 부하들을 시켜 [[암논]]을 살해했다.
 
그리고 2년 동안 [[그루스그술]]의 왕 [[암미훗]]의 아들 [[탈마이]]에게 있다가 [[요압]]의 권유로 다시 궁전에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다윗]]과 더불어 대리고 오자고 권유한 [[요압]]조차 2년간 압살롬을 무시하고 방치하자 이에 분하여 [[요압]]의 밭에 불을 질렀고 화가 난 [[요압]]에게 아버지를 보고싶다 청하여 4년이 지나서야 다윗을 만난다. 이후 그는 군략가인 [[아히토펠아히도벨]], 군사령관 아마시아 등을 포섭하며,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등 민심을 장악하고, [[반란]]을 준비했다.
그리고 한 병사에 보고로 달려온 [[요압]]과 그의 군사들에 의해 창에 찔려 죽었다.
 
=== 헤브론에서의 반란 ===
4년 후 압살롬은 드디어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헤브론]]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다윗은 [[요르단 강]]을 건너 마하나임 지역으로 피신했다. 압살롬은 백성들 앞에서 아버지의 후궁들과 동침한다.{{sfn|Kirk-Duggan|2004|p=59}}
 
=== 에브라임 숲 전투 ===
4년 후 압살롬은 드디어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고 다윗은 [[요르단 강]]을 건너 마하나임 지역으로 피신했다. 압살롬은 [[아히토펠아히도펠]]의 말을 듣지 않고 다윗이 심어놓은 심복 [[후사이후새]]의 의견에 따라 다윗이 재정비할 시간을 허용하다가 대패[[에브라임 숲 전투]]에서 대패한다. 끝내 [[다윗]]이 총지휘하는 요압, 아비새, 잇다이의이때의 군대에 의해 패배하여 도망가다가 [[향엽나무]]에 머리가 걸려 매달렸다. 그리고 한 병사에 보고로 달려온 [[요압]]과 그의 군사들에 의해 창에 찔려 죽었다.
 
=== 묘비 ===
압살롬이 죽은 [[키드론 계곡]]의 장소에 압살롬의 묘지가 세워졌다. 현대까지고 압살롬의 묘지가 전하는데, 현대에 전하는 묘지는 기원후 1세기경에 건축된 것이다.{{sfn|Price|House|2017|p=334}} 이 건축물이 [[헤로데 대왕]]의 묘지와 유사한 것으로 보아 [[헤로데 아그리파 1세]]의 묘지가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수세기동안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슬람 순례자들이 이 무덤에 돌을 던지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sfn|Vilnay|1999|p=113}}
 
== 각주 ==
{{각주}}
 
[[분류:히브리어 성경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