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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포항에서 자란 단병호는 노동운동가가 되기 전에는 스스로 보수적인 사람이었다사람이었다고 평가한다. [[동지상업고등학교]]를 중퇴한 이후 부모님과 함께 농사일을 하다가 1980년에 서울로 올라왔다.
 
젊은 시절의 단병호는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의 청년당원이었으며, [[박정희]]를 존경했다. 또한 1980년 [[광주항쟁]] 당시에는 "광주 사람들 다 때려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어린 시절의 친구로부터 진상을 전해듣고 나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1982년에는 [[동아건설]]에 입사하였으며, 1986년 연말 상여금 문제로 처음으로 파업에[[파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그는 공장 주임이었는데, 파업을 말리기는커녕, 이를 동조했다는 이유로 회사 측의 퇴사 요구를 받았다. 1987년 7월에는 이러한 문제인식을 발전시켜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이후 민주노조 운동이 가속화되면서 그는 1988년 지역업종 노동조합 전국회의 의장을 거쳐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90년에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위원장이 되어 [[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전노협 결성 당시 한 번, 위원장직 수행 당시 두 번 구속되기도 하였다.
 
전노협 위원장을 역임하던 단병호는 1995년에는 아직 불법 상태였던 [[민주노총]]의 부위원장을 지냈고, 1996년에는 [[전국민주금속노동조합연맹]] 위원장, 1998년에는 [[전국민주금속노동조합연맹]]의 위원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