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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세계 [[외교]], 더 일반적으로 1814년부터 1919년까지 [[열강]]들의 [[국제 관계]]를 다루고 있다. 소국들의 국제 관계는 각국의 역사 문서에서 다루고 있다. 이 시대는 [[나폴레옹 전쟁]]의 종말과 [[빈 회의]](1814년-1815년)부터 [[제1차 세계 대전]]의 종말과 [[파리 평화 회의]]까지의 시기를 아우른다. 이전 시대의 국제 관계에 관하여는 [[국제 관계 (1648년-1814년)]]을 참고하라. 1920년대와 1930년대의 국제 관계에 관하여는 [[국제 관계 (1919년-1939년)]]을 참고하라. 이 시기의 주요 주제로는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독일, 이후 미국과 일본의 급격한 산업화와 성장력을 들 수 있다. 이는 영향력 투사와 세력 확장을 위한 전세계에 걸친 제국주의 및 식민주의 경쟁을, 유명한 1880년대와 1890년대의 아프리카 분할을 야기했다. 이 반향은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이어진다. 영국은 통일 독일이 도전하기 전까지 자국을 패권국으로 만든, 식민지와 [[왕립 해군]]으로 구성된 비공식적인 경제망을 형성하였다. 이 시기는 1854년-1871년 사이의 간극,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간 몇 차례의 소규모 전쟁을 제외하고는 열강간의 전쟁이 없던 전반적으로 평화로운 세기였다. 1900년 이후로 발칸 지역에서 전쟁이 연이어 벌어졌는데, 통제력을 잃고 이후 시점, 기간, 사상자, 장기적 여파 측면에 있어 예상치 못한 대단히 파괴적인 사건이었던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으로 번지게 된다. 1814년, 외교관들은 프랑스,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1816년부터 1918년까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프로이센]] (1871년부터는 독일 제국)을 5대 열강으로 꼽았다. 이탈리아는 [[리소르지멘토]] 이후 열강에 들어가게 되었고, 제 1차 세계 대전의 전야에는 유럽에 두 개의 주요 연합이 있었다. [[프랑스]], [[영국]], [[러시아]]로 꾸려진 [[삼국협상]]과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로 구성된 [[삼국동맹]]이 바로 그것이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스위스]]는 소국이었다. [[루마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알바니아]]는 처음에는 여전히 법적으로 몰락해가는, 그들의 독립 이전까지는 주요 강국들에 포함되었을, [[오스만 제국]]의 한 부분으로서 독립적인 제후였다. 1905년부터 급속도로 성장한 두 비유럽 국가, [[일본]]과 [[미국]]이 열강에 들어갔다. 제1차 세계 대전은 예상치 못하게 그들의 군사적, 외교적, 사회적, 경제적 역량을 그 한계까지 시험했다.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제국은 패배하였다. 독일은 열강 자격을 잃었고, 다른 두 국가는 여러 국가들로 쪼개졌다. 승자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은 새롭게 창립된 [[국제연맹]] 정부총회의 영구 자리를 가져갔다. 미국은 다섯 번째 영구 회원이 되어야 했으나 자주적인 행동을 택하여 연맹에 결코 참가하지 않았다. 이후의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 외교사]]와 [[국제 관계 (1919-1939)]]를 참고하라.
== 1814년-1830년: 복고와 반동 ==
나폴레옹 전쟁 시기 [[프랑스 제국]]에 맞서 1814년 나폴레옹 세력의 붕괴를 이뤄낸 네 개의 주요 유럽 세력([[영국]],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은 전후 세계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1814년 3월의 [[쇼몽 조약]]은 이전에 이미 내려진 결정들을 확언했으며, 이후 더 중요한 1814-15년 빈 회의로 비준된다. 여기서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체코 지방을 포함한 [[독일 연방]]의 성립, 프랑스 보호령의 분할과 독립국으로의 합병, 스페인 부르봉 왕조의 왕정복고, 1830년에 현 벨기에가 될 지역을 포함하는 네덜란드 확장, 영국의 동맹국 보조금 지불 등이 다뤄졌다. 쇼몽 조약은 나폴레옹을 격퇴할 세력들을 통일하였으며, 이후 20년간 세력간 균형을 맞출 유럽협조(Concert of Europe)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 시기에 걸친 외교적 목표는 “세력의 균형”을 이뤄, 한두 세력이 지배자가 되는 것을 막는 것에 있었다. 한 세력이 우위에 선다면—예컨대 승전하여 영토를 새로이 획득한다면— 그 경쟁 세력은 필경 “보상”—즉, 승전국이 아님에도 영토 따위의 획득을 갈구하는 것—을 꾀할 것이다. 참전하지 않은 이 세력은 승전국이 제대로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면 노여워할 것이다. 예컨대 1866년, 프로이센과 그를 지원한 북독일연방이 오스트리아와 남독일 동맹국들을 이겼으나, 프랑스는 프로이센이 얻은 것에 균형을 맞춰줄 보상을 전혀 얻지 못한 점에 대해 억분했다.
=== 빈 회의: 1814년-1815년 ===
{{본문|빈 회의}}
빈 회의(1814년-1815년)은 나폴레옹 전쟁을 종결지었으며, 나폴레옹이 전복시킨 군주정 체제의 복고를 꾀하여 반동의 시대로 인도했다. 오스트리아 총리(1809년-1848년) [[메테르니히]]와 영국 총리(1812년-1822년) [[캐슬레이 경]]의 지도 아래서, 회의는 평화를 유지할 체제를 구축했다. [[유럽협조]](또는 “회의 체제”) 아래서, 주요 유럽 세력들—영국,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와 (1818년 이후) 프랑스—은 차이를 해결키 위해 정기적으로 만나기를 약조했다. 이 같은 계획은 유럽사상 최초라 할 만한 것으로 유럽의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해결하고 평화에 나아갈 방도를 제안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 체제는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의 선구자였으나, 1823년 와해되었다. 빈 회의는 빈에서 [[폴란드-작센 위기]]를, [[라이바흐]](류블랴나)에서 [[그리스 독립 문제]]를 해결했다. [[유럽협조|세 건의 주요 유럽 회의]]가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