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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왜국 교류 ===
근초고왕은 왜의 [[야마토 왕조]]와 국교를 수립하고 [[칠지도]](七支刀)와 칠자경(七子鏡)을 하사했다선물했다. 실제 칠지도의 제작 시기와 일본에서 발견된 유물이 칠지도가 맞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ref>칠지도 위증, 2004, 한겨레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9100030/2004/10/009100030200410181657200.html</ref> 백제가 언제부터 야마토 왕조와 수교하고 있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근초고왕에 이르러 양국 관계가 활기를 띤 것만은 분명하다.<ref group="주">이 일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엔 전무하고,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전한다. 현재 남아있는 《[[삼국사기]]》백제본기에는 근초고왕 즉위부터 20년(365)까지의 기록이 빠져 있다. 때문에 그 사이에 근초고왕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ref> 364년, 근초고왕은 가야의 부족국가 가운데 하나인 [[탁순국]](위치 미상)에 사신을 파견하였으며, 366년 3월에는 사신을 보내 [[신라]]와 동맹을 맺고, [[탁순국]] 왕을 통해 [[야마토 왕조]]와 외교관계를 수립하려 하였다. 당시 야마토 왕조는 탁순국에 사신 시마노스구데를 파견하였다가 백제가 왜와 통교하기를 원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자 시마노스구데는 근초고왕에게 부하 니하야를 파견하였다. 근초고왕은 니하야를 반갑게 맞이하여 오색의 채견 1필, 각궁의 화살, 그리고 철정 40매를 선물로 안겨 돌려보냈으며, 이듬해 367년 신라 사신 편에 구저(久氐), 미주류(彌州流), 막고(莫古)를 딸려보냈다.<ref group="주">막고(莫古)는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구수왕 조에 나오는 [[막고해]]와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ref><ref>{{서적 인용 |제목= 한권으로 읽는 백제왕조실록(증보판) | 저자= 박영규 |연도= 2004 |출판사=웅진닷컴 |쪽=140~141|ISBN=89-01-04751-9|인용문= 백제가 언제부터 왜와 통교하고 있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근초고왕에 이르러 양국 관계가 활기를 띤 것만은 분명하다. 이 일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엔 전무하고,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전한다. 백제와 야마토 왕조의 국교 수립은 신공황후 46년(서기 366년)에 이뤄졌다. 당시 야마토 왕조는 탁순국(위치 미상)에 사신 시마노구스데를 파견하였다가 백제가 야마토와 통교하기를 원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자 시마노스쿠네는 근초고왕에게 부하 니하야를 파견하였다. 근초고왕은 니하야를 무척 반갑게 맞이하여 많은 선물을 안겨 돌려보냈으며, 이듬해 신라 사신 편에 구저(久氐), 미주류(彌州流), 막고(莫古) 등 세 사람을 딸려 보냈다(이 세 사람 중 막고는 『삼국사기』「백제본기」근구수왕 조에 나오는 막고해와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 }}</ref> 이들이 함께 왜에 도착함으로써 백제와 야마토 사이에 국교가 수립되었다. 한편 근초고왕은 신라를 존경하여, [[368년]] 백제에서 가장 뛰어난 명마 두필을 신라에 선물하기도 했다.
 
=== [[고구려]]와의 마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