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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무렵 [[대한민국 공직선거법|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 정한 중립의무 및 헌법 위반을 시유로 야당에 [[대한민국 국회|국회]]로부터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직 재임 중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탄핵 소추]]를 당해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다. 하지만 이후 탄핵을 주도했던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은 여론의 역풍에 휩싸여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제17대 총선]]에서 참패하였고 얼마 후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에서 소추안을 기각하며 노무현은 다시 대통령 직무에 복귀하였다.
 
주요 업적으로는 권력층에 만연해 있던 권위주의와 정경유착을 타파하고 기존 정권이 하지 못했던 각종 재벌 개혁을 시행한 것이 꼽힌다. 상속증여세의 포괄주의를 도입해 대기업 총수의 탈세 여지를 좁힌 것,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를 시행한 것, 대기업 간 불공정 담합에 대한 적발과 처벌을 강화한 것 등이 높게 평가받는다.<ref name="rohkeiz"/> 임기 중 경제성장률은 4.42%이었다.
주요 업적으로는 권력층에 만연해 있던 권위주의와 정경유착을 타파하고 기존 정권이 하지 못했던 각종 재벌 개혁을 시행한 것이 꼽힌다. 상속증여세의 포괄주의를 도입해 대기업 총수의 탈세 여지를 좁힌 것,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를 시행한 것, 대기업 간 불공정 담합에 대한 적발과 처벌을 강화한 것 등이 높게 평가받는다.<ref name="rohkeiz"/> 임기 중 경제성장률은 4.42%로 OECD 평균성장률을 항상 상회했지만 역대 대한민국 정부 중 OECD의 성장률을 하회한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수치는 이후 [[이명박 정부]]의 2.9%와 [[박근혜 정부]]의 2.8%를 크게 상회하는 것이나, IMF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세계 경제성장률 대비 국내 경제성장률이 노무현 정부 -0.7%, 이명박 정부 +0.0%, 박근혜 정부 -0.5%로 나타났다. 노무현 정부는 골디락스 호황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성장률을 상회하지 못했고 도리어 이를 가장 크게 하회한 대한민국 정부로 기록되었다.<ref name="rohkeiz"/><ref>[http://www.yonhapnews.co.kr/economy/2013/01/08/0301000000AKR20130108183800008.HTML 韓-세계 경제성장률 差 14년만에 최대…저성장 굳어져, 연합뉴스 2013/01/09]</ref><ref>{{뉴스 인용 | 제목 = OECD"한국 내년성장률 30개 회원국중 최고" |url = https://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6542 | 형식 = | 출판사 = 뉴데일리 | 저자 = 정효진 | 쪽 = | 날짜 = 2009-11-24 | 확인날짜 = }}</ref><ref>{{뉴스 인용 | 제목 = 해외채권 201억弗 내년 만기 |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4&aid=0002240912 | 형식 = | 출판사 = 파이낸셜뉴스 | 저자 = 김규성 |쪽 = |날짜 = 2009-12-31 |확인날짜 = }}</ref><ref>{{뉴스 인용 | 제목 = 저성장 시대 '도토리 키재기?', 그래도 한국이 '선방했다' |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3404530 | 형식 = | 출판사 = 머니투데이 | 저자 = 임동욱 | 쪽 = | 날짜 = 2015-01-20 | 확인날짜 = }}</ref><ref>{{뉴스 인용 | 제목 = 노대통령 “보안법 폐기해야” |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0076734 | 형식 = | 출판사 = 한겨레 신문 | 저자 = | 쪽 = | 날짜 = 2004-09-06 | 확인날짜 = }}</ref>
 
부동산 정책은 전반적으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1997년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IMF 외환위기]]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소득 분배 지표가 더욱 악화되었다는 비판도 있다.<ref name="rohkeiz">노무현 정권 경제정책의 평가와 반성, 김기원, 2008</ref>
주요 실책으로는 정치적으로 친인척 및 측근비리, 사회적으로 교육 정책 및 부동산 정책의 실패, 경제적으로 양극화 심화에 따른 민생경제 파탄, 외교적으로 햇볕정책의 실패 등이 꼽힌다. 부동산 정책은 전반적으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1997년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IMF 외환위기]]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소득 분배 지표가 더욱 악화되어 서민경제의 파탄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있다.<ref name="rohkeiz">노무현 정권 경제정책의 평가와 반성, 김기원, 2008</ref> 게다가 반미적 입장, 편협한 국수주의, 친북적 정책으로 인한 외교적 모순으로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ref name=popinasia>{{서적 인용|last=Mizuno|first=Kosuke|title=Populism in Asia|location=Singapore|publisher=Nus Press|year=2009|isbn=9789971694838|pages=178-179}}</ref> 이렇듯 서민 생활과 직결되는 분야에서의 정책적 과오와 외교·안보에서의 실책으로 인해, 대통령 직무수행에 대한 [[여론 조사]]가 정례화 된 [[대한민국 제6공화국|제6공화국]] 이래 [[노태우]]를 제치고 임기 평균 국정 지지율 최하위를 차지할 정도로 대중적인 지지가 부족했던 대통령으로,<ref>{{웹 인용 |url=http://www.gallup.co.kr/gallupdb/reportContent.asp?seqNo=802&pagePos=1&selectYear=&search=&searchKeyword= |title=데일리 오피니언 2016년 1~12월 월간 통합 (각 세별 주요 지표 포함) |work=한국갤럽 |date=2016년 12월 15일 |확인날짜=2017년 1월 20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90126164355/http://www.gallup.co.kr/gallupdb/reportContent.asp?seqNo=802&pagePos=1&selectYear=&search=&searchKeyword= |보존날짜=2019년 1월 26일 |url-status=dead }}</ref><ref>{{서적 인용|last=Mizuno|first=Kosuke|title=Populism in Asia|location=Singapore|publisher=Nus Press|year=2009|isbn=9789971694838|pages=167}}</ref><ref name=nytpoll> {{뉴스 인용|title=South Korea's President Sags in Opinion Polls |url= http://www.nytimes.com/2006/11/27/world/asia/27korea.html |work=The New York Times |date=27 November 2006}}</ref>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같은 유행어가 나올 정도로 재임 시 국민들에게 많은 원성을 듣고 대중적 인기가 부족했으며 적이 많았던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ref>{{에피소드 인용|제목 = 대통령의 귀향 - 봉하마을 3일간의 기록 |시리즈=[[다큐멘터리 3일]]|url = http://www.kbs.co.kr/2tv/sisa/3days/view/oldvod/1521416_60266.html?kwd=%EB%85%B8%EB%AC%B4%ED%98%84&pageNum=1|네트워크 = KBS|방영날짜 = 2008-05-03|시즌 = 1|회= 48}}</ref>
 
정계 입문 초기에 직설적인 화법으로 청문회 스타 자리에 오르기도 하였으며, 이는 대중적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려 대통령 당선의 밑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임기 중에는 "대통령 못 해먹겠다", "미국 엉덩이 뒤에 숨어서" 등 그의 화법이 논란이 되며 보수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합법화, [[국가보안법]] 폐지 검토, [[2007년]] [[10월 4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과의 회담에서 NLL에 관한 발언이 오해를 불러 일으켜대해 보수 언론의 공격을 받았다.<ref>떠나는 윤상현 “노무현, NLL 포기 발언 안 해” 종전 입장 180도 뒤집어 주목, 경향신문 2014-05-08</ref><ref>신뢰와 존경을 받는 언론, 박석흥, 이담북스, 2009년 08월 21일 출간</ref> 보수 언론들은 노무현을 반미주의자이며 좌파로 규정하고 공격을 가했으나, 실제 임기 중에 펼친 정책은 그러한 노선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진보 진영으로부터는진영에서는 [[한미 FTA]] 추진과 [[2003년 이라크 침공|이라크 파병]] 등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신자유주의]] 우파에 가깝다는 비난을 받기도하기도 했다. 진보 언론으로부터는 신자유주의자라고, 보수 언론에게는 반미주의자라며 양측 진영에서 모두 비판받은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ref>노무현에게 '좌파 신자유주의' 딱지도 과분한 이유, 프레시안 2012년 10월 9일</ref> [[2004년 대한민국 행정수도 이전 계획|행정수도 이전]]과 [[혁신도시]] 등 지방 균형 발전을 추진하였으나 [[세종특별자치시]]의 수도 이전은 헌법재판소에서 관습헌법이라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려 행정도시로 선회하였다선회되었다.
 
퇴임 후 고향 [[김해시|김해]]의 [[봉하마을]]로 귀향하였다. [[2009년]] 검찰의 [[박연차 정관계 로비 사건|정관계 로비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되면서 노무현의 측근 세력들이 수사 대상에 오르게 되었고, 노무현과 개인적 친분이 있던 [[박연차]]로부터 회장으로부터 노무현 일가가 금전을 수수했다는 포괄적 뇌물죄 혐의를 받아 조사를 받았으며,<ref name="한국일보20090410">[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904/h2009041003255522000.htm 檢 "노무현·정상문 포괄적 뇌물 공범"] {{웨이백|url=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904/h2009041003255522000.htm# |date=20090410185918 }} - 《[[한국일보]]》, 2009년 4월 10일자.</ref> 노무현 또한 검찰 조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아내가 받았다는 노무현의 주장과는 달리, 박연차는 검찰 조사에서 노무현이 직접 전화를 걸어 자녀들의 집 장만을 위한 100만달러를 요구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였고,<ref name="leeinkyuchosun">{{뉴스 인용 |title="아이들 집이라도 사줘야한다며 盧 전 대통령 부부가 돈 요구" |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17/2011061700251.html |work=조선일보 |date=2011년 6월 17일}}</ref><ref name="directcall">{{뉴스 인용 |title=“盧 ‘100만 달러 보내라’ 직접 전화” |url=http://news.donga.com/3/all/20090411/8718963/1#csidx9d3692bb8b6f274811aebb76910472a |work=동아일보 |date=2009년 4월 11일}}</ref><ref name="yonhapbribery">{{뉴스 인용 |title="盧, 박연차에 전화 걸어 100만弗 요구"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09/04/11/0200000000AKR20090411036600004.HTML |work=연합뉴스 |date=2009년 4월 11일}}</ref> 비서관을 통해 요청을 받고 차명계좌에서 노무현의 아들 노건호와 조카사위 연철호가 동업하는 기업에 500만 달러를 송금한송금했다고 사실도언론은 밝혀졌다보도하였다.<ref name="leeinkyuchosun"/> 이러한 노무현 일가의 640만 달러 수수 의혹은 현재까지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같은 뇌물 수수 직접 개입 의혹이 수면으로 부상하면서 궁지에 몰리게 되자,<ref>{{뉴스 인용 |title=[박연차 게이트] 盧 궁지로 몬 뉴욕 아파트 |url=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0514004007#csidxa6d72417cba175bb7f132561a0e2bec |work=서울신문 |date=2009년 5월 14일}}</ref><ref>{{뉴스 인용 |title=달러 용처 말바꾸기…노 전대통령쪽 궁지 |url=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4745.html |work=한겨레 |date=2009년 5월 13일}}</ref> 노무현은 그 해 [[5월 23일]] 자택 뒷산인 [[봉화산 (김해)|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자살하였다투신하였다. [[양산부산대학교병원]]에서는 기자회견을 통해 두부 외상과 다발성 골절 등을 사망 이유로 결론내렸다. 노무현이그가 사망하면서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는 노무현의 뇌물 수수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시켰다.<ref>{{뉴스 인용 |title=[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법무부, 검찰수사 중단 지시 |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52329077 |work=한국경제 |date=2009년 5월 23일}}</ref> 사후 봉하마을에는 전국에서 노무현 재단의 주장에 따르면 500만여 명의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노무현의 장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국민장]]으로 치러졌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5&aid=0000160231 봉하마을 100만명 이상 조문…사상 최대 추모객] SBS 2009년 5월</ref>
 
== 대통령이 되기 이전 ==
 
== 평가와 비판 ==
[[1980년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인권 변호사로서 활동하다 정치에 입문하였다. 그의 정치 인생은 원칙을 굽히지 않으면서 [[권위주의]]와 [[지역주의]] 정치 타파를 위해 애쓴 노력의 연속이었다.<ref>{{뉴스 인용 | url = http://imnews.imbc.com/replay/nwtoday/article/2351794_2710.html | 제목 = '바보 노무현'의 '원칙주의' | 출판사 = MBC }}{{깨진 링크|url=http://imnews.imbc.com/replay/nwtoday/article/2351794_2710.html }}</ref><ref>{{뉴스 인용 | 제목 = 원칙주의 '바보 노무현' 탄생 비화 아시나요? | url =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63928 | 형식 = | 출판사 = 제주의소리 | 저자 = 이승록 | 쪽 = | 날짜 = 2009-05-26 | 확인날짜 = 2010-04-26 |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11104130444/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63928 | 보존날짜 = 2011-11-04 | url-status = dead }}</ref><ref>{{뉴스 인용 | url = http://www.lawissue.co.kr/news/articleView.html?idxno=7411 | 제목 = 본인도 좋아한 '바보 노무현' 별명 탄생 비화 | 저자 = 신종철 | 출판사 = 로이슈 | 날짜 = 2009-05-28 | 확인날짜 = 2009-05-26 | 형식 = | 뉴스 = |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11107112809/http://www.lawissue.co.kr/news/articleView.html?idxno=7411 | 보존날짜 = 2011-11-07 | url-status = dead }}</ref> 재임 중에는 대연정 제안과 사법 개혁 등을 통해 한국 사회의 지역주의와 권위주의를 탈피하려고 애쓴노력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그는 지지 정당으로부터도 비판받으면서 원칙과 소신에 입각해서 당정 분리라는 성과를 이루어내었다. 일각에서는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민주적이고 서민적인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재임 기간 중에 보수적인 시각에서는 사회주의적이고 반미와 친북적인 설화가 많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으며, 진보적인 시각에서는 기업의 요구를 많이 반영된 [[비정규직 보호법]]으로 정규직 전환을 가로막고 대량 해고로 이어져 실직자를 양산한 점(이랜드 사태 등)과 같은 노동 환경의 악화와 [[한미 FTA]]의 추진, 이라크 전쟁 파병, 부실한 부동산 개혁 및 친재벌적이라고 비판을 받아 진보, 보수 어느 진영에게서도 명확한 지지를 얻지 못했다못하였다. 보수주의자에 따르면 '친북좌파'라는 비판과 진보 진영에서는 '친미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ref>{{저널 인용 | url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3&artid=14177 | 형식 = | 제목 = [커버스토리] 카멜레온 노무현 | 저널 = 위클리경향 | volume = 뉴스메이커 720 | issue = | 날짜 = 2007-04-17 | 저자 = 정용인 | 쪽 = | 인용 = | pmid = | doi = | id = | 확인날짜 = 2009-05-26 }}</ref> 이 양립하고 있다. 이런 파병결정에 대해 훗날 [[문재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 노 전 대통령 개인은 이라크 전쟁이 비도덕적이기 때문에 반대 입장이었다. 그러나 북핵 위기 국면에서 미국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이 대북 제한폭격을 거론했고거론했다. 그것을 막기막으려면 위해미국의 파병을요구를 했다고어느 정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라고 털어놓았다말했다.<ref>{{웹 인용 |url=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102/h2011021121030121000.htm# |제목=문재인 "박연차 게이트 면목없어, MB 정부는 사이비 보수" |확인날짜=2012-10-27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04121512/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102/h2011021121030121000.htm# |보존날짜=2011-11-04 |url-status=dead }}</ref>
 
[[2010년]] 9월에9월 시행된 "역대 대통령중에대통령 중에 가장 뛰어난 사람은 누구인지" 묻는 여론조사에서 [[박정희]]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노무현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으로 가장 많이 올랐다. 전체 지지율은 25.3%로 나타났으며 특히 20~30대 젊은층과, 화이트칼라 직종, 대학재학 이상의 고학력층에서는고학력층에서 박정희를 능가하는상회하는 지지율을 보이기도 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9241436401&code=910100 '박정희 향수' 흐릿… MB 신뢰도 하락 때문?] 경향신문 2010년 9월 24일</ref>
 
=== 긍정적 평가 ===
==== 법치주의 확립을확립에 위한대한 노력 ====
노무현은 대통령 취임 뒤 국정원장의 독대 보고를 없앴고,<ref name="권위주의">{{뉴스 인용 | url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43145 | 제목 = 칼자루 놓았다가 '검'에 쓰러진 노무현 | 날짜 = 2009-06-01 | 출판사 = 오마이뉴스 | 저자 = 김용국 }}</ref> 사법 고시 23회인 [[강금실]]을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 장관에 임명함으로써 사법부에 뿌리 깊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가 있다.<ref>{{뉴스 인용 | url = http://www.consumernews.co.kr/news/view.html?gid=main&bid=news&pid=152062 | 제목 = 노무현의유산,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가?" | 날짜 = 2009-06-01 | 출판사 =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 저자 = 김미경 | 확인날짜 = 2009-06-09 |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40116235443/http://www.consumernews.co.kr/news/view.html?gid=main&bid=news&pid=152062 | 보존날짜 = 2014-01-16 | url-status = dead }}</ref> 2003년 구태의연한 대법관 선발 관행에 제동을 걸었고, 사법 사상 최초로 여성 헌법재판관([[전효숙]])과 서열을 무시한초월한 여성 대법관([[김영란 (법조인)|김영란]])을 탄생시켰다.<ref name="권위주의" /> 또 사법 개혁 위원회를 통해 법조 일원화, 국민의 사법 참여 등의 사법부 개혁을 위한 밑거름을 쌓았다.<ref name="권위주의" /> 일각에서는 지나친 의전 등으로 문제가 되던 법원들의 재판 사무 감사가 [[2006년]] 폐지된 이유가 [[김영란 (법조인)|김영란]] 대법관이 기수를 파괴하며 올라갔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ref>김두식 저, 《불멸의 신성가족》, 247쪽, [[창비]].</ref> 언론인 강준식은 "선거공영제를 확대하여 돈이 들지 않는 선거제를 확립한 것이라든지, 부작용은 있었지만 시민단체의 활발한 정치참여를 유도한 것이라든지, 시장 개입을 없앰으로써 정경유착의 고리를 상당 부분 끊은 것이라든지, 인권을 신장시킨 것이라든지, 권위까지 함께 버리는 우를 범했지만 권위주의를 청산한 것이라든지 하는 것 등은 다 그의 공이다."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 |제목=노무현 , '바보' 였던가 |url=https://jmagazine.joins.com/monthly/view/286633 |보존url=https://archive.today/20200829180634/https://jmagazine.joins.com/art_print.php?art_id=286633 |출판사=월간중앙 |저자=강준식 |날짜=2011-01-01 |보존날짜=2020-08-29 |확인날짜=2020-08-30 }}</ref>
 
==== 어족자원 복원 ====
해양수산부 장관 출신으로 연안 어족자원 복원에 노력했다. 당시 문제가 되고 있던 저인망식 불법어로를 근절하기 위해 촘촘한 그물을 제조하는 업체에 영업정지를 가하는 등 강경책을 사용했으며 연안에 인공 어초를 대량 투입하는 등의 대책을 시행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이철호의 시시각각] 중국은 이 대형 참치를 보라 |url=https://news.joins.com/article/7096006 |출판사=중앙일보 |저자=이철호 |날짜=2012-01-10 |확인날짜=2020-08-30 }}</ref><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408301829261&code=940301 저인망 싹쓸이 불법어로 大檢이 '칼' 뽑았다]</ref>
 
==== 노무현사병 벙커출신의 명명대통령 ====
문민정부 출범 이후로 군생활을 제대로 한 최초의 대통령으로 국민들에게 대접을인식되기도 받았다하였다. 참여정부 당시에 [[김대중]]은 해안경비대 대원으로 군생활을 하였다고 알려졌었고 학도병 [[김영삼]]의 이야기는 전혀 대중에게 알려지지 못하였다. 최전방에서 초병 근무를 하였다는 진지가 '노무현 벙커'로 명명이 되었다고 유명해지며, 그 진지에서 근무를 서며 자랑스러워하는 초병들이 언론에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유엔 평화유지군|UN 평화유지군]]으로 지속적인 해외 파병은 있었으나 미군에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년-현재)|항구적 자유 작전]]과 관련하여 [[이라크_전쟁|이라크전]]이 발발함에 따라 추가적으로 [[대한민국 이라크 평화재건사단|자이툰부대]]의 이라크 파병이 결정되었다. 파병 동의 기간에는 [[국회]]에서 전투병 파병이냐 비전투병 파병이냐는 뜨거운 논란이 있었다. UN군이 아닌 [[대한민국 국군|국군]]으로서 해외 파병을 [[군사 정권]]이 아닌 행정부에서 최초로 결정한 수장이 되었다.
 
=== 부정적 평가 ===
[[노무현에 대한 비판]]을 참고하십시오.
재임 기간 중에 보수적인 시각에서는 사회주의적이고 반미와 친북적인 설화가 많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으며, 진보적인 시각에서는 기업의 요구를 많이 반영된 [[비정규직 보호법]]으로 정규직 전환을 가로막고 대량 해고로 이어져 실직자를 양산한 점(이랜드 사태 등)과 같은 노동 환경의 악화와 [[한미 FTA]]의 추진, 이라크 전쟁 파병, 부실한 부동산 개혁 및 친재벌적이라고 비판을 받아 진보, 보수 어느 진영에게서도 명확한 지지를 얻지 못했다. 보수주의자에 따르면 ‘친북좌파’라는 비판과 진보 진영에서는 ‘친미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ref>{{저널 인용 | url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3&artid=14177 | 형식 = | 제목 = [커버스토리]카멜레온 노무현 | 저널 = 위클리경향 | volume = 뉴스메이커 720 | issue = | 날짜 = 2007-04-17 | 저자 = 정용인 | 쪽 = | 인용 = | pmid = | doi = | id = | 확인날짜 = 2009-05-26 }}</ref> 이 양립하고 있다. 이런 파병결정에 대해 훗날 [[문재인]]은 미국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이 대북 제한폭격을 거론했고 그것을 막기 위해 파병을 했다고 털어놓았다.<ref>{{웹 인용 |url=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102/h2011021121030121000.htm# |제목=문재인 "박연차 게이트 면목없어, MB 정부는 사이비 보수" |확인날짜=2018-01-20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04121512/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102/h2011021121030121000.htm# |보존날짜=2011-11-04 |url-status=dead }}</ref>
 
==== 정치 ====
그는 스스로 지역주의에 반대하며반대하여 [[민주자유당]]과 [[새천년민주당]]의 주류의 그늘에서 벗어나 개혁 정당인 [[열린우리당]]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국회에서의 그는 자신의 지지 정당인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기반의 취약성과 새천년민주당,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과 같은 기존 정치 세력과의 타협이 부족해 다수당의 횡포로 탄핵 사태에 이르러 정치적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 취약한 정치 기반 =====
그는 스스로 지역주의에 반대하며 [[민주자유당]]과 [[새천년민주당]]의 주류의 그늘에서 벗어나 개혁 정당인 [[열린우리당]]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국회에서의 그는 자신의 지지 정당인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기반의 취약성과 새천년민주당,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과 같은 기존 정치 세력과의 타협이 부족해 다수당의 횡포로 탄핵 사태에 이르러 정치적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국회의원]] [[김경재]]는 그의 정치력 자체를 의심하였다. [[2004년]] [[김경재]]는 노무현을 가리켜 "[[미국]]은 노 대통령이 다중인격자처럼 행동해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노대통령은 임시정부 김구 주석을 실패한 정치인이라고 말하는 등 기본적인 상식이 없는 지도자"라고 지적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0038730 민주당 김경재의원 노대통령에 독설 퍼부으며 탄핵 정당성 부각] 뉴시스 2004년 03월 15일자</ref> [[김근태]]는 "한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이라는 평을 받는 것은 노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그들이 하라는 대로 다 했기 때문"이라면서 "어떻게 현충일에 일본에 가서 '김구(金九) 선생은 실패한 정치인'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느냐"라고 지적하기도 했다.<ref>[http://news.donga.com/3//20030722/7966546/1 김근태의원 "盧의 '웃음거리' 발언이 웃음거리"] {{웨이백|url=http://news.donga.com/3//20030722/7966546/1 |date=20140116202307 }} 동아일보 2003년 07월 22일자</ref>
 
노무현은 대선 당시 깨끗한 정치, 낡은 정치 타파를 기치로 내걸어 집권에 성공했으며, 재임 중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도덕성을 강조했다내걸었다. [[참여정부]]가 내건 제일의 기치 또한 도덕성이었다.<ref name="측근비리1">{{뉴스 인용 | 제목 = '깨끗한 정치' 특히 강조했는데…도덕성 큰 타격 | url =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573433 | 형식 = | 출판사 = SBS | 저자 = 정준형 | 쪽 = | 날짜 = 2009-04-07 | 확인날짜 = 2010-04-26 }}</ref> 그러나 친형인 [[노건평]]을 비롯하여 [[안희정]], [[이광재 (정치인)|이광재]] 등의 측근 비리에 연루되었다. 항상 도덕성을 토대로 정치적 정당성을 주장하던 노무현이었지만 측근과 친인척의 비리를 막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 측근 · 친인척 비리 논란 =====
노무현은 대선 당시 깨끗한 정치, 낡은 정치 타파를 기치로 내걸어 집권에 성공했으며, 재임 중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도덕성을 강조했다. [[참여정부]]가 내건 제일의 기치 또한 도덕성이었다.<ref name="측근비리1">{{뉴스 인용 | 제목 = '깨끗한 정치' 특히 강조했는데…도덕성 큰 타격 | url =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573433 | 형식 = | 출판사 = SBS | 저자 = 정준형 | 쪽 = | 날짜 = 2009-04-07 | 확인날짜 = 2010-04-26 }}</ref> 그러나 친형인 [[노건평]]을 비롯하여 [[안희정]], [[이광재 (정치인)|이광재]] 등의 측근 비리에 연루되었다. 항상 도덕성을 토대로 정치적 정당성을 주장하던 노무현이었지만 측근과 친인척의 비리를 막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인용문 | 노무현이 대통령 되면 이제 이상 더 대통령의 의혹 사건을 가지고 국회에서 밤낮 조사하자, 이렇게 싸우는 일은 없어질 것입니다. 부정부패 없어야 합니다. 정치 지도자들의 부정부패 문제가 국회 일의 절반을 넘습니다. | 2002년 12월, 16대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ref name="측근비리1" />}}
{{인용문 | 지금까지 청탁문화는 밑져야 본전이었습니다. 본전이었는데, 그걸로는 청탁 문화를 근절할 수 없습니다. 걸리면 패가망신으로…. | 2002년 [[12월 26일]], 대통령 당선자 특별 회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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