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랑제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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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680년 이후부터 아우랑제브는 통치 태도와 정책을 바꿨다. 그가 이슬람만을 위한 통치자로 변신한 것이다. 따라서 이제 힌두교도들은 동료가 아니라 종속자가 되었다.
 
이러한 정책의 변화는 악바르가 폐지했던 [[인두세]](지즈야)가 [[1679년]]부터 비(非)이슬람교도들에게 다시 부과된 것으로 부터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렇게 되자 아우랑제브의 셋째 아들 악바르는 아버지를 배신하였고(라지푸트 반란, [[1680년]] ~ [[1681년]]), 힌두교도들 역시 제국을 섬기기는 했지만 예전만큼 열성적이지는 않게 되었다.
 
그는 비자푸르와 골콘다의 데칸 왕국들을 [[1686년]] ~ [[1687년]] 사이에 정복했지만 오히려 뒤이은 불안상태만을 초래했고 이런 불안한 상황은 오랜 경제 위기를 더욱 재촉하고 말았다. 이러한 경제 위기는 마라타와의 전쟁으로 더욱 심화되었다. 시바지의 아들 삼바지는 사로잡혀 [[1689년]] 처형되었고 왕국은 멸망했으나, 이 때부터 마라타족은 게릴라 전술을 채택했고 민중들의 동조 속에서 남인도 전역으로 퍼졌다. 아우랑제브는 이 때문에 마라타 고지대 국가들의 요새들을 공략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으나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