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기 (언어철학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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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필자의 가족들에 관한 내용을 자세하게 서술하였습니다. 무돌선생의 제자들의 이름이 추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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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미군정]] 하에 《새한신문》을 발행하였다. 1946년 3월 연희 대학으로 복직해 영어음성학을 강의하였으며, 1947년부터 1948년 문과대학성 서리(한림원 원장)이란 보직을 맞아 일하였다. 1950년 1월 부터 1958년 서울 대학 언어학과 주임교수로 활동하였으며 1951년에는 전곡 전시 연합대학 교무처장을 역임하고 1952년에는 미국 [[코넬 대학교]] 교환교수로 초빙되었다.
 
1958년 12월 [[문교부]] 차관직에 임명되어 한글전용 운동을 적극 추진하고 한글간판 장려 정책을 널리 펼치었으나 [[4.19 혁명]]으로 인해서 차관직으로 부터차관직으로부터 물러나게 되었다. [[5.16 쿠테타]] 이후 정치적 격동기였던 1963년 [[김준연]] 선생의 추천으로 [[자유민주당]] 중앙 위원회 의장으로 잠시 정치계에서 활동을 하였다. 다시 학계로 돌아 가신 계기는 명지학원 유상근 박사의 초빙으로 [[명지대학]] 초대 대학원 원장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1975년 명예박사학위를 동대학으로 부터동대학으로부터 수여하였다.
 
무돌 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는 그 수가 적지 않다. 서울대 언어학과에서 배출한 학자는 허웅, 김방한, 신익성, 안사균, 성백인, 손호민, 이현복, 배영경, 박형달, 전영표 등이다. 연세대 영어영문과에서 배출한 많은 제자 중 대표적인 인물은 허웅(서울대학교 교수), 김방한(서울대학교 교수), 성백인(서울대학교 교수), 이현복(서울대학교 교수), 손호민(미국 하와이 주립학교 교수)과 김동길(연세대학교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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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김선기
*부인: 사별한 김은성(1911년 생)은 배화여고 제1회 졸업생이며, 배화국민학교 교사를 역임했다. 한글학자 김윤경선생의 제자로 남편 김선기를 도와 한글운동을 하였으며 전국문맹퇴치운동에 참여하였다. 김은성과 사이에 김두순(건축가), 김우순(사업가), 김성순(미국 이주)과 세딸 김혜경(서강대학교 윤능민교수의 부인), 김란경(포항공대 김병원교수의 부인), 김지경(의사 유재휘의 부인)을 두었다.
*재혼한 이윤경(1921년 생) 동지사 대학 경영학과 졸업)하고 과의 사이에 김장순(지아이엠 씨스템 사장)과 네딸 김문희(전 동남보건 전문대학 교수/사업가 서정준의 부인), 김은희(서양화가/재미 사업가 김문철의 부인), 김보희(연세대 객원교수/한국외국어 대학 반병률교수의 부인), 김관희(서강대학교 임채호교수의 부인)을 두었다. 11명의 자녀는 모두 결혼하여 25명의 손자, 손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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