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중추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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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급 행정기관은 그에 대응하는 자문 기관 또는 의결 기관을 구성했는데, 중추원, 참여관, 도회, 부회, 읍회, 면협의회 등이 그것이었다. 설립 당시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임원 구성은 의장(議長) 1명, 부의장(副議長, 칙임대우) 1명, 고문(顧問, 칙임대우) 15명, 찬의(贊議, 칙임대우) 20명, 부찬의(副贊議, 주임대우) 35명과 서기관장 1명, 서기관, 통역관 각 약간 명이었다. 이들 중 의장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정무총감]]이 겸임했다. 따라서 한국인(조선인)이 차지한 최고의 자리는 부의장이었다. 이러한 구성은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 이후 개정되어 찬의, 부찬의를 통틀어 참의(參議)로 개칭하였다.
 
조선총독부 중추원은 [[1919년]] [[3월 1일]] [[3.1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단 한번의 소집 명령조차 없었다. 친일파들에게 나눠준 유일한 정치적 관직인 이 중추원의 부의장에는 [[김윤식 (1835년)|김윤식]](훈2등 자작, 이후 3·1운동 가담으로 작위 박탈), 고문에는 [[이완용]](훈1등 백작), [[박제순]](훈1등 자작), [[고영희 (1849년조선귀족)|고영희]](훈1등 자작), [[조중응]](훈1등 자작), [[이지용]](훈1등 백작), [[권중현]](훈1등 자작), [[이하영]](훈1등 자작), [[이근택]](훈1등 자작), [[송병준]](훈1등 자작), [[임선준]](훈1등 자작), [[이재곤 (1859년)|이재곤]](훈1등 자작), [[이근상 (1874년)|이근상]](훈2등 남작), [[이용직]](자작, 이후 3·1운동 가담으로 작위 박탈), [[조희연]](남작, 사후에 반납)이 임명되었다.<ref>{{서적 인용
|저자=김삼웅
|제목=친일정치 100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