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소설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1,024 바이트 추가됨 ,  9개월 전
편집 요약 없음
 
== 생애 ==
[[1948년]] 5월 5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김광주]](金光洲)와 정무순(鄭戊順) 사이에서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ref name="mchosun">{{뉴스 인용 |제목=오효진의 인간탐험「칼의 노래」金薰 |url=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202100070 |확인날짜=2021-03-28 |호=2002년 2월호 |출판사=월간조선}}</ref> 아버지 김광주는 [[상해 임시 정부]] 시절 [[김구]] 밑에 일한 독립운동가이며, 광복 후 [[경향신문]] 문화부장과 편집부국장을 지낸 언론인이자 소설가이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암에 걸려 투병 생활을 할 때 아버지의아버지가 연재하던 무협지 원고를 대필하기도 했다.<ref name="mchosun" />
 
[[돈암초등학교]], [[휘문중학교]],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으나, 2학년 때 [[바이런]]과 [[메리 셸리]]를 읽고 영문학에 심취하여 1학기까지 다니고 학업을 중단했다가, 2년 뒤 고려대학교 영문과 2학년으로 전과했다. 이때 국문과를 다니던 현재의 부인 이연화(李燕和)와 만났다. <ref name="mchosun" />
[[1994년]] 겨울, [[문예지]]《[[문학동네]]》 창간호와 1995년 봄호에 장편소설《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발표(2회 분재)하며, 47세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소설가로 데뷔한 뒤에도 언론인 활동을 병행했다. 1991년 새로 창간한《TV저널》의 편집국장이 되었고, 1994년에는 계열사인 주간지 《시사저널》에 입사하여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를 역임했으며, 1998년에는 국민일보로 이직하여 편집국 부국장, 출판국장, 편집위원으로 1년 남짓 일했다. 1999년 한국일보에 편집위원으로 재입사했고, 이때 한국일보에 연재한〈김훈의 우리 땅 자전거 여행답사는 나중에 내용을 더하여 수필집 《자전거 여행》으로 토대가 되었다발간되었다. 2000년 시사저널 이사 겸 편집국장으로 복직했지만, 《한겨레21》에 실린 인터뷰가 논란을 일으키자 3개월 만인 10월 7일 퇴사했다.<ref name="da_001009">{{뉴스 인용 |제목='쾌도난담' 파문 김훈씨 돌연 사표 |url=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01009/7592008/1 |날짜=2000-10-09 |확인날짜=2021-03-28 |출판사=동아일보}}</ref>
 
2001년 초, 두 번째 장편소설《[[칼의 노래]]》의 집필을 시작하여 두 달 만에 탈고하고 5월 11일에 출간했다. 《칼의 노래》는 출간 직후 평단의평단으로부터 높은좋은 평가를 받으며, 같은 해 10월 제32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고, 2007년 12월 기준, 100만 부 이상 팔리며 밀리언셀러가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훈 소설 ‘칼의 노래’ 100만부 돌파 잔치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59422.html#csidx2d2b1c0a4f887529b17c46084537722 |url=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59422.html |날짜=2007-12-26 |확인날짜=2021-03-28 |출판사=한겨레신문}}</ref>
 
2002년 2월 20일 [[한겨레신문]]에 부국장 대우 사회부 취재기자로 입사했고, 철도노조의 파업을 다른 기사로 서울 언론인클럽서울언론인클럽 기획취재상을 수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본사 김훈기자 언론상 기획취재상 |url=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9100006/2002/03/009100006200203282247091.html |날짜=2002-03-28 |확인날짜=2021-03-28 |출판사=한겨레신문}}</ref><ref>{{뉴스 인용 |제목=[인터뷰] 사건기자로 현장 뛰는 김훈 씨 |url=http://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3873 |날짜=2002-03-06 |확인날짜=2021-03-28 |출판사=한국기자협회}}</ref> 2003년 1월 20일에 퇴사했다.
 
2004년 이래이후,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소설과 수필을 꾸준히 발표하고발표해오고 있다.
 
== 연보 ==
* 1999년, 한국일보 편집위원
* 2000년, 《시사저널》 이사 겸 편집국장으로 입사. 3개월만에 퇴사
* 2001년, 장편 《[[칼의 노래]]》 발표, [[동인문학상]] 수상
* 2002년, 한겨레신문사 취재기자로 입사. 서울언론인클럽 기획취재상 수상
* 2003년, 한계레신문사 퇴사
* 2007년, 장편 《[[남한산성 (소설)|남한산성]]》 발표, [[대산문학상]] 수상
 
== 작품 경향 ==
<!-- 정리 및 보충 필요 -->
1986년 [[한국일보]] 재직 당시 3년 동안 한국일보에 매주 연재한 것을 묶어 낸 《문학기행》(박래부 공저)으로 해박한 문학적 지식과 유려한 문체로 빼어난 여행 산문집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으며 한국일보에 연재하였던 독서 산문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1989) 등의 저서가 있다. 1999∼2000년 전국의 산천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쓴 에세이 《자전거여행》(2000)도 생태·지리·역사를 횡과 종으로 연결한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김훈이 언어로 붙잡고자 하는 세상과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선상에서 밧줄을 잡아당기는 선원들이기도 하고,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는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민망하게도 혹은 선정주의의 혐의를 지울 수 없게도 미인의 기준이기도 하다. 그는 현미경처럼 자신과 바깥 사물들을 관찰하고 이를 언어로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하며, 무엇보다도 어떤 행위를 하고 그 행위를 하면서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느낌을 메타적으로 보고 언어로 표현해낸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는 그를 일러 “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고 평하고 있기도 하다.
 
 
== 수상 ==
* [[2001년]] - 장편 《[[칼의 노래]]》로 제32회 [[동인문학상]] 수상
* [[2002년]] - 제18회 서울 언론인클럽서울언론인클럽 언론상 기획취재상 수상
* [[2004년]] - 단편 〈화장〉으로 제28회 [[이상문학상]] 수상
* [[2005년]] - 단편 〈언니의 폐경〉으로 제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
* [[2007년]] - 장편 《[[남한산성 (소설)|남한산성]]》으로 제15회 [[대산문학상]] 수상
 
== 논란 ==
이에 대해, 김훈은 당시 상황에서 누군가는 써야만 했고 한국일보 내 다른 기자들이 회피했기에 자신이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그 시대엔 내가 그걸 안 하면 누군가가 해야 됐어요. 어느 신문사든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조선, 중앙, 동아… 뭐 다 했어요. 나는 내 손목으로 그 짓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내 죄는 피할 수가 없는 거죠”라고 말했다. 반성하냐는 질문에는 “반성한다고 말해서 용서되는 것도 아녜요. 제가 저지른 겁니다. 그래서 너무 수치스러워서 1989년 연말에 회사를 그만둔 겁니다. 내가 너무 더러워서…”라고 대답했다답했다.<ref name="mchosun" />
 
《한겨레21》에 실린 대담에서는 “내가 안 썼으면 딴 놈들이 썼을 테고… 난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때 나를 감독하던 보안사 놈한테 이런 얘기를 했지. 내가 이걸 쓸 테니까 끌려간 내 동료만 때리지 말아달라. 걔들이 맞고 있는 걸 생각하면 잠이 안 왔어. 진짜 치가 떨리고….”라며 자신이 죄가 많다고 말했다.<ref name="h21_327">{{뉴스 인용 |제목=[쾌도난담] 위악인가 진심인가 |url=http://legacy.www.hani.co.kr/section-021023000/2000/021023000200009270327078.html |날짜=2000-09-27 |확인날짜=2021-03-28 |호=제327호 |출판사=한겨레21}}</ref>
2000년 9월, 시사 주간지 《한겨레21》(2000년 9월 27일자, 제327호)의〈쾌도난담〉에서 최보은 기자, [[김규항]] 작가와 대담하던 중, 남성우월주의, 민중예술과 거대 담론에 대한 경멸, 통일 반대, 제벌 세습 옹호, 조선일보 극찬 등의 발언을 했다. “여성들한테는 가부장적인 것이 가장 편한 것”,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압도적으로 유능하다”, “기자는 2류나 3류”, “(한겨레의 민중주의는) 모든 민중을 천민화해가는 것”, “거대 담론은 다 오류”, “재벌이 아들한테 회사 물려주는 거는 한심하지만 불가피한 것”, “조선일보는 가장 우수한 신문” 등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켰다.<ref name="h21_327" /><ref>{{뉴스 인용 |저자=김현정 |제목='한겨레21' <쾌도난담> 파문 |url=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704 |뉴스=[[미디어오늘]] |날짜=2000년 10월 5일}}</ref>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당시 김훈이 편집국장으로 재직 중이던 시사저널의《시사저널》의 기자가 항의성 사직을 하자, 같은 해 10월 7일 시사저널 편집국장 자리를 내놓고 회사를 떠났다.<ref name="da_001009" />
 
이때의 발언 중 여성 비하와 남성우월주의적인 발언에 대해서는 2011년 10월 [[지승호]]와의 인터뷰에서 “남자라는 종족이 지가 잘나서가 아니라 사회제도가 그렇게 만들어놨던 것”이라며 여성 차별과 학대의 결과로서 나타난 남성의 우월성에 대해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ref>{{웹 인용 |제목=김훈 작가 인터뷰(3) |url=https://tiprich.com/sibidori/6826541592816184 |웹사이트=그까짓 인터뷰, 그래도 인터뷰 |날짜=2020-06-22 |확인날짜=2021-03-28}}</ref>
== 일화 ==
* 휘문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산악부에 들어가서 등산을 많이 다녔고,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바위타기를 처음 배웠다.<ref name="mchosun" />
* 소설가 [[황석영]]이 한국일보에 대하소설 《[[장길산 (소설)|장길산]]》을 연재할 당시 황석영의 담당 기자였다. 소설을 쓰다 구상이 막히면 잠적해버리곤 했던 황석영을 잡는 것이 당시담당 기자 김훈의 주요 임무였고, 결국 연재가 지연되면 지면을 메우기 위한 ‘지난 줄거리’ 요약을 맡아 쓰기도 했다. 술만김훈이 술에 취하면 이때 황석영과의 일을 두고 “그때 잡아서 죽여버리는 건데”라고건데...”라고 주정을 부린다며, 황석영이 MBC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서》(2008년 10월 29일 황석영 편)에 나와 밝힌 바 있다.
* 소설가 [[조정래]]는 수필집《황홀한 글감옥》에는에서 《[[태백산맥 (소설)|태백산맥]]》 관련발표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소송에 휘말렸을 때, 검찰에서검찰이 요구한 관련자료를관련 자료를 제출하러 가는 조정래를 따라 검사실 문 앞까지 동행한 유일한 사람이 김훈이었다고 밝혔다.
* 자신의 자전거에 ‘풍륜(風輪)’이라는 애칭을 붙였다. 이 ‘풍륜’을 타고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한국 곳곳을 여행하고 쓴 것이 에세이 《자전거 여행》이다. 당시 김훈은 《자전거 여행》의 인세로 ‘풍륜’의 월부값할부값 500만원을 갚겠다고 했고, 《자전거 여행》은 1000만1,000만 원짜리 새 자전거를 사고도 한참 남을 두둑한 인세를 거두었다.<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3030717331162107&outlink=1 머니투데이 2013년 3월 7일자]</ref>
[[파일:2013년 12월 4일 소설가 김훈, 서울특별시 소방공무원 황영호, 오영환, 김명호.jpg|섬네일|[[오영환 (1988년)|오영환]] 등 소방공무원들과 함께]]
* 평소 [[소방공무원]]에 대한 애정을 인터뷰와 글에서 표현한 바 있다. 유년 시절의 기억에 대한 글에서 6·25 전쟁 이후 잿더미가 된 가난한 서울에서 홀로 높게 솟아있던 소방서 망루와 그 망루가 줬던 안도감에 대해 서술하였다. 유년시절 장래희망을 적는 신상조사서에 ‘소방수’라고 적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 |제목 ="소방관은 거룩한 직업… 살려서, 살아서 돌아오라" |url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2/06/2011120600239.html?Dep0=twitter&d=2011120600239 |출판사 =조선일보 |날짜 =2012년 12월 6일 |확인날짜 =2015년 1월 3일}}</ref>
{{인용문|재난에 처한 인간을 향하여, 그 재난의 한복판으로 달려드는 건장한 젊은이들이 저렇게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아름다움이 아직도 남아있고, 정부와 국가의 기능이 정확하고도 아름답게 작동되고 있다는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고, 인간만이 인간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인간만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는 그 단순명료한 진실을 나는 질주하는 소방차를 보면서 확인한다.}}
* 대학 2학년 2학기 방학하던 무렵 도서관에서 우연히 《난중일기》(이은상 역)를 읽고, 사실에 입각하는 그의 리얼리스트 정신에 매료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순신이 감당해야 했던 절망뿐인 현실, 절망의 시대에 헛된 희망을 설치하고 그것을 꿈이라고 말하지 않고 절망을 절망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서 통과해 나가는 한 인간이라 이순신을 평가하고, 이순신의 문장을 무인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사실만을 가지런히 챙기며 사실에 정확하게 입각한 언어라면서 "한국의 신문이나 저널에서 사용하는 사회적 담론이라는 것은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한지 오래"라고 비판하고,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해버리는 이런 언어가 횡행할 수록 인간 사이에는 소통이 아니라 단절만 심화될 뿐이며, 이런 단절은 이미 거의 다 완성되어 있는 듯 하다며 자신의 한국어의 현실에 대한 인식을 드러냈다.<ref>김훈, '회상' 《바다의 기별》 생각의 나무, 2008</ref>
*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사고 책임자들과 당시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후, 세월호 사고에 대한 확실한 조사와 희생자 추모를 위한 활동을 해왔다.<ref>{{뉴스 인용 |제목=[새해 특별 기고] 소설가 김훈 |url=https://news.joins.com/article/16832265 |날짜=2015-01-01 |확인날짜=2021-04-10 |출판사=중앙일보}}</ref><ref>{{뉴스 인용 |제목=팽목항 가는 소설가 김훈 “세월호 이대로 종결 못해”… 문인들 ‘희망버스’ 3일 출발 |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410022145505 |날짜=2014-10-02 |확인날짜=2021-04-10 |출판사=경향신문}}</ref>
 
== 저서 ==

편집

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