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평 대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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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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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국이 상당에서 부딪히다''' ===
기원전 260년 4월, 진나라의 장수 왕흘(王齕)은 군사를 이끌고 상당(上黨)<ref>상당(上黨)은 한(韓)의 영토로 진(秦)이 공격한 곳 이다(기원전263년). 조(趙) 효성왕에게 상당을 얻으면 큰 이익이다라고 한 사람이 평원군(平原君)이다. 이일이 진의 분노를 사게된다.</ref>을 접수하기 위하여 이동하였다. 그러나 이미 군민들은 조나라로 도망간 상태였고, 진나라의 지도부는 왕흘에게 상당 군민들을 추격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움직임을 간파한 조나라는 명장 염파(廉頗)를 파견하여 군민들을 접수하고 진군을 막게 하였다. 양국 군대는 중원 깊숙한 지역에 위치한 장평에서 부딪혔다.
 
== 전투의 진행 ==
 
=== 양국이 상당에서 부딪히다 ===
=== '''전투의 초기''' ===
기원전 260년 4월, 진나라의 장수 왕흘(王齕)은 군사를 이끌고 상당(上黨)<ref>상당(上黨)은 한(韓)의 영토로 진(秦)이 공격한 곳 이다(기원전263년). 조(趙) 효성왕에게 상당을 얻으면 큰 이익이다라고 한 사람이 평원군(平原君)이다. 이일이 진의 분노를 사게된다.</ref>을 접수하기 위하여 이동하였다. 그러나 이미 군민들은 조나라로 도망간 상태였고, 진나라의 지도부는 왕흘에게 상당 군민들을 추격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움직임을 간파한 조나라는 명장 염파(廉頗)를 파견하여 군민들을 접수하고 진군을 막게 하였다. 양국 군대는 중원 깊숙한 지역에 위치한 장평에서 부딪혔다.
초기의 움직임은 조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진군은 염파의 심리전에 밀리고 말았다. 간헐적인 전투에서 승리는 계속 거두고 있었으나 결정적인 승리는 얻지 못한 상태였다. 염파는 장평에 강력한 보루를 쌓고 진군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6월과 7월의 맹공은 진군의 승리로 끝났으나, 진군은 6국이 합종하여 쳐들어온다는 소문에 심하게 동요하고 있던 상태였다. 이대로 가면 조군이 승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