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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날짜=2021-4-20|아시아}}
'''기곡제'''(祈穀祭)는 나라에서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며 [[정월대보름]] 첫
== 개요 ==
나라에서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며 정월 첫 신일
== 유래 ==
기곡제는 정월에
== 형태 ==
환구단 제사는 기곡(祈穀)·[[기우제|기우]](祈雨)를 위한 제천의례였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기곡제는 원구단이 설치된 고려시대에 시작되었다. 고려의 원구제는 정월 첫 신일에 풍작을 빌었고, 4월 중 적당한 날을 택하여 기우제인 우사(雩祀)가 거행되었다.
원구단에서 지낸 기곡제에 대한 문헌상의 첫 기록은 고려 성종 때로 나타난다. 『고려사(高麗史)』 「예지(禮志)」에 의하면, 성종 2년(983) 정월에 왕이 원구에서 기곡제를 친행하고, 후직(后稷)에게 제사하는 적전(籍田)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40 「상신기곡원구제축(上辛祈穀圓丘祭祝)」에 보면, 원구기곡제에는 “하늘의 일은 소리가 없어도 만물이 힘입어 자라나는데 나라를 지니는 근본은 식량이 있어야 사람들이 믿고 살아갑니다. 바야흐로 첫 봄을 맞이하여 풍년이 되기를 기도하노니 상제의 혜택이 아니면 이 백성들이 무엇을 의지하리까." 하는 축문으로 기원하였다.
이와 같이 정월 상신일(上申日)에 원구단에서 상제에게 풍년을 기원하였다. 그리고 원구기곡제에 참여한 관리들은 “정월 모일 상신(上辛)에 임금께서 원구에 친히 제사하여 풍년을 비시니 각각 그 직분을 다해야 할 것이다. 만약 충실히 정성을 다하여 임하지 않으면 나라에 정한 형벌로 다스릴 것이다.” 하고 맹세문을 낭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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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욱. 朝鮮後期 祈穀祭 設行의 의미, 2000년
* 김철웅. 고려 國家祭祀의 體制와 그 특징, 2002년
*『고려사절요』
*『춘관통고(春官通考)』
*『증보문헌비고』
*『예기(禮記)』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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