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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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왕이 즉위했을 때 [[중국 대륙]]은 [[수나라]]에 의해 통일되었다. 남조의 진을 멸망시키고 중국 대륙을 통일한 [[수 문제]]는 북쪽으로 눈을 돌려 [[돌궐]]과 고구려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수나라는 우선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의 영토를 염탐하였고, 그 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 사신을 보내 지형을 알아보게 하였다. 마찬가지로 영양왕 역시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동태를 살폈다.
 
마침내 [[수 문제]]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비밀리에 군대를 양성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598년]] 고구려는 말갈병 1만 명을 동원하여 요서 지역의 [[임유관]](현재의 [[산하이 관]])을 선제 공격했다. 그러나 임유관을 점령하지는 못했다.
 
수 문제는 이에 격분하여 음력 6월에 한왕 [[양량]]과양량과 [[왕세적]]을왕세적을 대원수로 임명하고, [[주라후]]로 하여금 보급을 맡겨 수륙군 30만 명을 동원하여 [[요동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하지만 주라후의 보급선을 미리 알아챈 고구려군은 주라후의 보급선을 격파하여 군량 보급을 끊었고, 때마침 장마가 닥쳐 수나라의 30만 대군은 끝내 5만 명의 정예병을 이끈 고구려의 장수인 병마원수 [[강이식]]의 전략에 말려들어 결국 대패하여 병력을 대부분 잃고 퇴각하고 만다.
 
수 문제는 이 소식을 듣고 출전 장수들을 모두 불러들여 잡아들인 후 죽이거나 감옥에 가두었으며, 다시 한 번 고구려를 침공하고자 하였으나, 중신들의 반대로 고구려 침공 계획은 중단되었다. 이 상황을 놓치지 않고 영양왕은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