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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김일손의 사초는 생각보다 오랜기간 드러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성중엄]], [[윤효손]] 등 편수관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일손이 사초를 너무 형식에 맞지 않고 뒤죽박죽 써버렸고 위의 문제된 기록외에도 신빙성 없는 기록들이 너무 많아서<ref name=":0" /> 상관들이나 편수관들이 조잡한 김일손의 사초를 크게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종 사망후 [[성종실록]]을 쓰기 위해 모든 사초를 모으면서 김일손의 사초도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한편 김일손은 훗날 증언에서 이 시기에 [[이극돈]]이 자신을 비방하는 내용을 사초에서 삭제해줄 것을 부탁했다는 말을 주변에서 들었다고 중종때 사관들은 이것 때문에 이극돈이 크게 빡쳐서 원한을 가지고 김일손 사초를 공개했다고 주장한다. 일단 김일손이 이극돈을 비난하는 사초를 쓴 거는 이극돈의 증언으로도 확인되는 부분이지만 이극돈이 사초의 삭제를 부탁했다는 주장은 김일손의 착각이거나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은 게, 앞에서 말한 대로 당시 김일손의 사초는 (문제적인 내용과는 별개로) 매우 조잡해서 실록편수관들도 크게 신경쓰지 않던 사초였고, 무엇보다 사초의 사사로운 수정은 당시에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중범죄로, 특히 이극돈은 예종 때에 실록청에서 일하면서 부하와 동료들이 사초를 함부로 수정하다가 처형당하는 것을 눈으로 직접 목도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극돈은 사초의 공개를 막으려고 했던 인물이었다. 이극돈은 김일손의 사초를 전부가져오라는 국왕 연산군의 지시에 처음에는 후대에 공정성을 위해 반대했고 뒤이어 연산이 윽박을 지르자 간신히 문제되는 부분을 발췌하는 것으로 수습했던 인물이다. 만약 이극돈 등이 막지 않았더라면 김일손의 사초가 전부 열람되어 무오사화는 더 크고 잔혹한 사화로 확대되었을 것이고 특히 김일손의 사초내용이 역모 문제와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극돈과 당상들은 사화의 확대를 막기 위해 정말 목숨을 걸고 막았던 것이다.
 
그리고 정황상 특이한 부분이 있는데 당시 무오사화 직전 김일손은 경상도 청도군에 요양중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사초를 발췌해서 확인한 날짜가 11일이었는데 김일손은 바로 다음날인 12일에 한양으로 잡혀와서 심문을 받는다. 조선시대 기준으로라면 한양에서 청도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십수일이 걸리는 거리인데 이 말인 즉슨 이극돈 이하 실록청 관리들이 사초를 발췌하기 전부터 김일손을 잡기 위해 미리 사람을 보냈다는 것이다. 실제 실록에서(작성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