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하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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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4년]] [[8월 11일]] 아르군이 즉위하고 왕족들에게 각지에 소유한 영지의 통치권을 임명하는데, 이때 가이하투는 룸 셀주크 왕조의 아나톨리아 방면에 임명되었다.
 
[[1291년]] [[1월 19일]] 아르군이 겨울 숙영지가 있던 아스란(지금의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아르군 휘하에 있던 여러 무장들인 국내 각지의 왕족들에게 이 부보를 전하고자 사자를 파견하였는데, 아바카 가문의 친위군이었던 카라우나스 만인대의 대장 타가차르는 호라산을 영유한 부장 노우르즈 휘하의 카라우나스 군과 대립하고 있던 아르군의 적자 가잔의 즉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때문에 아나톨리아(룸) 지방의 가이하투를 추대하기로 계획하고 사자를 보냈는데, 아나톨리아 지방의 세력이 권력을 쥐는 것을 두려워한 아르군의 장군들은 바그다드 방면에 있던 바이두를 추대하기로 결정한다. 이 소식을 들은 가이하투는 격노하였으나 바이두는 자신이 연장자가 아니며 가이하투가 보복할 것을 두려워하여 장군들의 권고를 고사하였다. 아르군의 정실 부인인 우르크 하툰([[올제이투 칸|올제이투울제이투]]의 생모)이 가이하투의 즉위에 찬성한다는 뜻을 비치면서, 5월에 가이하투의 군주 계승이 거의 확고해졌다.
 
그리하여 [[1291년]] [[7월 23일]] 반호 서부의 아흐라트 근교에서 처음으로 즉위가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