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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민협회가 주도한 흑인 이주는 1822년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서아프리카 지역의 열대 질병으로 인해 초기 정착자의 과반수가 사망할 정도로 위험이 컸음에도 미국과 캐리비안 제도의 많은 해방흑인들이 자유를 찾아 라이베리아로 이주하기 시작하여 1867년까지 최소 1만 3천 명 이상의 이민자가 있었다.
 
이 기간에 미국 식민 협회는 해안 지역의 원주민 족장들로부터 땅을 사들여 라이베리아의 국토가 될 땅을 마련하였다. 1847년 7월 26일에는 이들 미국계 라이베리아인들이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포하고 헌법을 제정하였으며, 여러 법제도는 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이후 1847년 7월 26일에 이들 미국계 라이베리아인들은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포하고 헌법을 제정하였으며, 법제도는 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미국과의 교역으로 초기에는 빠른 발전을 이루기도 했으나 19세기 말부터 경제난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4년]] [[8월 5일]]에는 [[독일 제국]]에 [[선전 포고]]하여 [[파리 강화회담]]에 참석하고 [[국제 연맹]]의 창설국에 이름을 올리는 등 독립국의 국제적 지위를 확고히 했다.
 
이후 1847년 7월 26일에 이들 미국계 라이베리아인들은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포하고 헌법을 제정하였으며, 법제도는 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미국과의 교역으로 초기에는 빠른 발전을 이루기도 했으나 19세기 말부터 경제난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4년]] [[8월 5일]]에는 [[독일 제국]]에 [[선전 포고]]하여 [[파리 강화회담]]에 참석하고 [[국제 연맹]]의 창설국에 이름을 올리는 등 독립국의 국제적 지위를 확고히 했다.
 
=== 미국계 라이베리아인 주도 시대 ===
[[파일:William_Tubman_1943.jpg|섬네일|right|200px|라이베리아의 전성기를 이끈 [[윌리엄 터브먼]]]]
건국 초기부터 미국에서 교육받은 미국계 라이베리아인들(Americo-Liberians)은 기득권을 형성하여 해안 지역의 정치·경제적 우위를 확고히 하는 한편 라이베리아 원주민들에 대해서는 차별적인차별 대우를 유지하였다. 1929년에는 국제연맹으로부터 현대 노예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아 조사가 이루어지며 [[찰스 D. B. 킹]] 대통령 내각이 사퇴하기도 했다.
 
20세기 중반부터는 근대화가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는데, 미국이 독일 견제를 위해 라이베리아에 대규모 물자, 인프라 지원을 한 것도 영향이 컸다. 특히 1944년 취임한 [[윌리엄 터브먼]] 대통령은 외국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여러 개혁을 펼치며 아프리카 전체 2위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라이베리아의 전성기를 열었다. 또한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제국주의 철폐 운동을 주도하며 여러 [[범아프리카주의]] 운동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원주민 흑인에 대한 여러국가적 차별 대우와차별과 일당독재 체제가 지속되고 있었다.
 
1971년 터브먼이 임기 중에 사망하자 부통령이던 [[윌리엄 톨버트]]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그는 최초로 야당을 합법화하며 일당독재 체제를 끝내는 한편 친서방 정책을 버리고 공산권 국가에 접근하는 등 여러 변혁을 시도했다. 심각한 빈곤을 타파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폈으나 실패하며 신임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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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1980년 톨버트가 야당을 반란 혐의로 다시 해산하자 원주민인 크란족(Krahn) 출신의 군인 [[새뮤얼 도]]가 쿠데타를 일으켜 [[윌리엄 톨버트]] 대통령을 살해하고 [[트루 휘그당]] 소속이던 정치인들을 처형한 후 정권을 잡았다. 그는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원주민 주도의 라이베리아로 바꾸겠다며 지지를 결집하여 군정 통치를 시작했고, 초기에 친미 정책을 되돌리며 미국의 원조를 받기도 하였으나, 곧 부패와 정책 실패로 경제난이 심화되고 원조도 끊겨갔다. 1985년에는 공약대로 선거를 실시하였으나 여러 부정선거 행위가 있었고, 이후 정치적 반대자들을 숙청하거나 민족학살을 벌이며 독재의 길을 굳혀갔다.
 
이에 1989년 군벌이던 [[찰스 테일러 (라이베리아의 정치인)|찰스 테일러]]가 이끄는 애국전선(NPFL)이 주변국의 지원을 받아 도 정권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켜 [[제1차 라이베리아 내전]]이 전개되었고, 곧 1990년 몬로비아를 정악한 반란군이 도 대통령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정치적 혼란 속에 다른 반란세력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결국 수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끝에 1997년 내전이 종료되고 찰스 테일러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테일러 정권은 주변국의 반인도적인 반군을 지원하거나 부정한 인력착취와 밀수를 행하며 이익을 챙겨챙겼고, 결국 국제적으로 테러지원국가로 여겨지며 고립되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혼란 속에 1999년 북서부에서 테일러 정권에 반대하는 LURD가 봉기하면서 [[제2차 라이베리아 내전]]이 시작되었고, 2003년에는 동남부에서 또다른 반란군 MODEL이 일어났다. 결국 동년 6월에 아크라에서 세력간 회담이 열렸고 곧 테일러는 축출되어 이후 [[인도에 반하는 죄]] 혐의에 대한 유죄를 선고받았다.
 
=== 21세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