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 (1868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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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李始榮, [[1869년]] [[1월 15일]]([[1868년]] [[음력 12월 3일]]) [[한성부]] ~ [[1953년]] [[4월 17일]])은 [[조선]], [[대한제국]]의 관료이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 정치인이다.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로, 자(字)는 성흡(城翕), 성옹(聖翁)<ref name="한국사대1">한국사대사전(2004, 발행인 박영근, 고려출판사 발행) 1039페이지</ref>, [[호 (이름)|호]]는 성재(省齋)·시림산인(始林山人), 본명은 성흡(聖翕)이다. 총리대신을 지낸 [[김홍집 (1842년)|김홍집]]의 사위이다.<ref name="한국사대1"/> [[1885년]]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1891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부승지, 우승지(右承旨)에 올라 [[내의원]] [[부제조]], [[상의원]] [[부제조]] 등을 지냈다.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 독립 운동에 투신, 일가족 40인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에 참여하였고, [[1919년]] [[9월]] 통합 [[대한민국 임시 정부|임정]] 수립 이후 [[김구]], [[이동녕]] 등과 함께 임시 정부를 수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광복 이후 귀국,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임정 요인이 단정론과 단정반대론으로 나뉘었을 때는 단정론에 참여하였다. [[1948년]] [[7월 24일]]부터 [[1951년]] [[5월 9일]]까지 [[대한민국]]의 제1대 [[부통령]]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제2대 대통령선거에 [[민주국민당 (1949년)|민주국민당]] 후보로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