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조선귀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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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Kim Yun-sik.JPG
| 설명 =김윤식 (1910년 이전)
| 출생일= [[1835년]] [[시헌력|음]]음력 [[10월 3일]]<ref name="bday1" /><ref name="bday2" /> ([[그레고리력|양력]] [[10월 29일]])
| 출생지= [[조선]] [[경기도]] [[광주군 (경기도)|광주부]]
| 사망지= {{국기|일제 강점기}} [[경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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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훈= {{국기|대한제국}} [[대훈위 이화대수장]]
}}
'''김윤식'''(金允植, [[1835년]] [[시헌력|음]]음력 [[10월 3일]]<ref name="bday1">續陰晴史(속음청사) [http://db.history.go.kr/id/sa_013_0010_0020_0060 高宗24年丁亥 10月3日]: 初三日,風雪初寒栗烈如大冬天氣,今日余生朝也。</ref><ref name="bday2">續陰晴史(속음청사) [http://db.history.go.kr/id/sa_013_0070_0030_0110 高宗32年乙未 10月3日]: 初三日庚午,晴,今日余回甲生朝也。</ref> ([[그레고리력|양력]] [[10월 29일]])<ref>[https://astro.kasi.re.kr/life/pageView/8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기]</ref> ~ [[1922년]] [[1월 21일]]<ref name="dday">동아일보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2012200209203001 1922년 1월 22일 3면]: 雲養老人 金允植 씨는 팔십여세의 로령으로 鳳翼洞 자택에서 한가로히 일월을 보내더니 달포이래 쇠증으로 병석에 누어 작이십일일 정오에 고요히 세상을 떠낫는대 향년이 팔십칠세이라.</ref><ref>동아일보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2012300209201002 1922년 1월 23일 1면]</ref>)은 문장가로 이름이 높던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의 문신, 문인, 학자이다. 자는 순경(洵卿), 호는 운양(雲養), 본관은 [[청풍 김씨|청풍]](淸風)이며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군]]에서 출생했다. [[유신환]], [[박규수]], [[유대치]], [[강위]]의 문인이다.
 
구한말 개화파 정치인의 한 사람이며 [[1919년]] 일본 정부에 조선의 독립을 탄원하는 탄원서를 올리기도 했다. [[중추원]] 간부를 지냈고 한때 [[조선귀족]] 신분이었으나 [[이용직]]과 함께 [[3·1 운동]]에 동조하여 작위가 박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