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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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李雄, [[274년]] ~ [[334년]], 재위:[[304년]] ~ [[334년]]. 다만 [[304년]] ~ [[306년]]은 성도왕, [[306년]]부터 황제를 칭함)은, 중국 [[오호 십육국오호십육국 시대]] [[성한]](成漢)의 초대 황제황제이다. 자는 중준(仲儁)이고, 묘호는 태종(太宗)., 시호는 무제(武帝)이다.
 
== 생애 ==
이웅은 파저족(巴氐族) 출신의 무장 [[이특 (성한)|이특]](李特)의 셋째 아들로 [[274년]] 출생하였다. 이특이 [[301년]]에 거병하자 그 휘하에서 활약하였으며, [[303년]] 2월, 이특이 전사하자 뒤를 이은 [[이류]](李流)의 밑에서 활약하였다. [[서진]](西晉)의 나상(羅尙)의 군대가 맹공을 가해 이류는 항복하려 하였으나 이웅이 반대하여 항복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군대를 이끌고 분투하여 나상의 군대를 압도하게 되었다. 9월에 이류가 병사하자 뒤를 이어 대장군·익주목(大將軍益州牧)을 자칭하였다.
[[274년]], 티베트계 저족(氐族)의 일파였던 파저족(巴氐族)의 지도자로, [[성한]]의 실질적 건국자인 이특(李特)의 제3자로서 태어난다. [[303년]], 숙부 이류(李流)의 뒤를 이어, 대장군 익주목을 자칭. 아버지를 죽인 익주자사 나상을 물리치고 성도를 탈환, 익주를 거의 제압했다. 이후에 익주의 현자 범장생(范長生)을 옹립할려고 도모하지만, 당사자로부터 거절 당한다.
 
윤12월, 이웅은 나상을 물리치고 성도를 점령하였으며, 이후 익주 지역을 장악하였다. 익주의 현자 범장생(范長生)을 영입하려 하였으나 범장생이 거절하여 실패하였다. [[304년]] 10월, 이웅은 여러 부하들의 추대로 성도왕(成都王)에 즉위하고 연호를 고쳐 [[건흥 (성한)|건흥]](建興)이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이때를 성한이 건국된 기점으로 본다. [[306년]] 3월에는 범장생이 이웅에게 투신하였고 이웅은 그를 승상(丞相)으로 삼았다. 6월에 이르러 이웅은 황제에 즉위하고 국호를 '''대성'''(大成)이라 하였다.
[[304년]], 부하의 여러 장군의 청원을 받아 성도왕(成都王)을 칭해, 건흥의 연호를 세워 서진으로부터 완전하게 자립했다. 이것은 동년 흉노의 유연이 한왕을 칭한 것과 함께, 오호 십육국 시대의 개막을 나타내는 중대한 사건이다.
 
이웅의 치세에는 범장생 등에 의해 법을 간소화하고 현명한 정치를 펼쳐 30년 가까운 재위 기간 동안 안정된 평화를 누렸다.
[[306년]], 승상을 임명한 범장생으로부터의 권유에 따라 제위에 대해, 국호를 대성(大成)으로 정하였다. 내정을 범장생등에 맡겨 관용과 간소한 정치를 유의한 결과, 전란의 세상에 대하고, 재위 30년간 익주의 안정을 가져왔다.
 
[[334년]], 61세에 사망을 하였다. 친자식이 아니고, 현명한 조카 이반(李班)을 태자로 정했지만, 친자식들의 반발을 사, 이것이 성한의 쇠망을 부르는 원인이 된다.
 
{{왕 계승표|
 
앞선 왕 이름= [[이류]](李流) |
재위 숫자= 3|
재위 연도= [[303년]] ~ [[334년]] |
다음 왕 이름= [[이반 (성한)|이반]](李班)|
}}
 
[[분류:성한]]
[[분류:오호십육국시대 사람]]
[[분류:274년 태어남]]
[[분류:334년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