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두 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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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두에게는 14 명의 아들이 있었지만, 그는 아들들 대신 딸 쿠툴룬을 신뢰하여 그의 자문을 얻었다 한다.
 
하지만 [[몽골 제국]] 내에서 자신의 세력과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데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있던 카이두는 [[1301년]] 아리크 부케의 차남 멜릭 테무르, 차가타이 칸국의 칸 두아와 함께 최대 규모의 원정에 나섰다. 전쟁 초기엔 카이두의 군대가 우세하여 [[카말라 (원나라)|카말라]]와 그의 아들 [[예순 테무르]]군대를 압도했지만 [[카이샨]]의 군대가 전장으로 지원되면서 전황은 급속도로 변했다. [[차가타이 칸국]]의 칸인 [[두아]]는 전투 중 부상을 당해 본국으로 퇴각했고, 카이두는 [[예순 테무르]]군과의 전투 중 [[카라코룸]]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1301년]] [[9월 26일]] 혹은 [[1302년]] [[8월 25일]] 사망하고 말았다.
 
카이두는 죽기 전에 자신의 차남인 오르스를 후계자로 지명했지만 [[차가타이 칸국]]의 [[두아]]는 이를 무시하고 [[1303년]]에 장남인 [[차파르]]를 옹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