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 (시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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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에 연천에서 [[서울]] [[성북동]](당시 일제 강점기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으로 이사를 갔다. 그 해에 《[[동아일보]]》에 〈무상〉, 〈그러나 거문고의 줄은 없고나〉 등을 발표하여 등단했고, 이후 [[1931년]] [[에드거 앨런 포]]의 〈[[애너벨 리]]〉를 비롯하여 [[찰스 램]], [[존 키츠]] 등의 영미 작가들의 번역 작품을 내놓았고, 꾸준히 시를 발표하면서 활동했다. 그 외에도 [[1938년]]에 발표한 수필 〈우부우화〉를 비롯하여 많은 수필을 썼다.
 
김상용의 시에는 동양적이고 관조적인 허무의 정서가 깔려 있으나 낙관적인 방식으로 어둡지 않게 표현된 것이 특징이다. [[1934년]] 《문학》에 발표한 〈[[남으로 창을 내겠소]]〉와 이 시의 마지막 연 "왜 사냐건 웃지요"가 유명하다.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과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교육/학술 부문에 선정되었다. [[1943년]] 《[[매일신보]]》에 발표한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등 총 3편의 친일 작품이 밝혀져 있다.<ref>{{저널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