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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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17년(1880)에는 [[김홍집 (1842년)|김홍집]] 일행이 2차 수신사로 파견되어 일본의 현저한 발전상을 보고 돌아와 세계 정세에 대한 관심을 보다 드높였다.
 
이들 수신사들은 일본의 제도를 본떠 조선의 제도를 개혁할 것을 주장하여, [[청나라|청국]]을 시찰하고 돌아온 [[영선사 (사절단)|영선사]] 일파와의 사이에 의견 충돌이 일어났다. 수신사로 갔다 온 사람은 대개 급진적이었으며 영선사로 갔다 온 사람은 대개 점진적인 개혁을 주장했다.
 
이후 1882년 [[임오군란]] 직후 일본에 사과를 하기 위해 [[박영효]] 일행이 3차 수신사로 파견되었는데, 이 때 [[태극기]]가 처음 사용되었다.
 
==같이 보기==
* [[영선사 (사절단)]]
* [[조사 시찰단]]
 
{{글로벌}}
[[분류:조선]]
[[분류:조선의 대외 관계]]
[[분류:한일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