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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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 때 사촌 누이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조피 도로테아]]와 결혼했고, [[조지 2세]]와 [[하노버의 조피 도로테아|조피 도로테아]](훗날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프리드리히 2세]]의 어머니)를 뒀다. 그러나 결혼 13년 만에 아내의 부정을 이유로 즉시 이혼하고 [[알든 성]]에 유폐한 후, 자신의 정부 [[멜루지네 폰 슐렌부르크]]와의 사이에서 세 딸 안나 루이즈 조피, 멜루시나, 그리고 마르가레테 게르투르트를 뒀다.
 
[[1701년]] 제정된 [[영국 왕위계승법]]으로 제임스 1세의 손자인손녀인 어머니에 이어 영국 왕위 계승 3순위가 됐다. 그보다 앤 여왕에 더 가까운 친척들도 50인 이상 있었으나 영국 왕위계승법은 카톨릭 신자의 왕위 계승을 원천 금지하고 있어, 조지 1세와 그 어머니가 앤 여왕의 가장 가까운 신교도 혈육으로서 왕위 계승자에 이름을 올렸다.
 
[[1714년]] [[7월 8일]]에 어머니가 향년 84세로 죽자 차기 계승자가 됐고, [[그레이트브리튼의 앤|앤]] 여왕이 같은 해 [[8월 1일]] 후사 없이 향년 49세에 비만으로 인한 당뇨 합병증 등의 원인으로 서거하자 54세의 나이에 영국 왕에 올랐다. 그는 영어를 할 줄 몰랐고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점차 각의를 주재하지 않게 됐고, [[1721년]] [[로버트 월폴]](Robert Walpole)에게 전권을 줘 각의를 주재하게 하면서, 이른바 '각의의 수석'(Primius inter pares, the first in equals)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이는 동시에 '군주는 군림하지만, 통치하지는 않는다'는 입헌군주제의 원칙을 확립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의원내각제]]와 [[입헌군주제]]가 영국에서 뿌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