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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축향지국 왕의 셋째 아들로 남인도 [[팔라바 왕조|파사국]]({{llang|ta|பல்லவர்}})에서 태어났다. [[470]]년 무렵 남중국에 와서 선종을 포교했다. [[반야다라]]에게서 배우고 40년간 수도했다. 불심 깊던 양 무제와 선문답을 주고 받았다는 전설이 있다.<ref>{{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2}}</ref> [[520년]] 전후에 [[북위 (북조)|북위]]의 도읍 [[뤄양]]에 갔다가 그 후 [[허난성]] 숭산 [[소림사]]에서 좌선수행(坐禪修行)에 정진하고, 그 선법(禪法)을 [[혜가]] 등에게 전수하였다. 달마의 전기에는 분명치 않은 점이 많다.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아는 염화미소나 보리달마를 다룬 여러 이야기는 후대에 꾸며진첨삭된 전설로것으로 신빙성이 전혀 없다보여진다. 염화미소 전설과 서역 28조의 전법설(傳法說)은 인도의 어떤 문헌에도 기록이 없고 중국 대륙 선종 초기 문헌에도 기록이 없다. 보리달마도 남북조시대에 서역에서 온 보리달마라는 이름의 중을 다룬 기록이 있지만, 그 사람은 낙양의 아름다운 불탑을 보고 경탄해마지 않는 매우 경건한 중이거나 불경인 『릉가경(楞伽經)』 중에서 무척 까다로운 경전에 통달하고 논리에 맞고 체계 있는 수련법이라고 주장하는 이입사행(二入四行)을 강조한 승려로서 선종 조사인 보리달마와는 그 성격이나 행적이 판이하다.
 
당송 시대 선종의 발전과 더불어 보리달마의 전기가 추가되고 여러 가지 허구를 이용한 전설이 보완되어 선종의 제1대 조사로서 달마상(達磨像)이 사실(史實)과 무관하게 허구로서 확립되었다. [[소연 (양)|양 무제]]와의 선문답을 다룬 이야기, 혜가가 눈 속에서 팔을 자르고 법을 전수받았다는 이야기, [[서역]]에서 서방으로 돌아가는 보리달마를 만났다다는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