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히친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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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 = 히친스, 2007년 촬영.
| 출생일 = {{출생일|1949|4|13}}
| 출생지 = {{국기나라|영국}} [[포츠머스]]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2011|12|5|1949|4|13}}
| 사망지 = {{국기나라|미국}} [[뉴욕주텍사스 주]] [[뉴욕 시티휴스턴]]에서 <br /><small>([[식도암]] 및 [[폐암]], [[림프절]] 종양의 합졍으로 사망)</small>
| 필명 =
| 직업 = 작가, 언론인, 평론가, 공술인
| 언어 =
| 국적 = {{국기나라|영국}}, {{국기나라|미국}}
| 민족 =
| 시민권 = {{국기나라|영국}}, {{국기나라|미국}}
| 학력 =
| 모교 = [[벨리얼 칼리지 (옥스퍼드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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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자 = 엘레니 멜리그로<br />(1981년 ~ 1989년; 이혼)<br />캐럴 블루<br />(1989년 ~ 2011년; 사별)
| 부모 = 에릭 어니스트 히친스, 이보네 진 히크먼
| 동거인 =
| 자녀 = 아들 알렉산더, 딸 소피아(엘레니 멜리그로우 소생), 딸 안토니아(캐롤 블루 소생)
| 친척 = 동생 [[피터 히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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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사이트 =
}}
'''크리스토퍼 에릭 히친스'''(Christopher Eric Hitchens, [[1949년]] [[4월 13일]] ~ [[2011년]] [[12월 15일]])는 영국계 미국인 작가이자 [[언론인]], 평론가이다. 40여년동안 언론인 생활을 한 히친스는 많은 [[토크쇼]]와 순회 [[강연]]을 거치면서 대표적인 대중적 [[지식인]]이 되었다. 그는 《[[월스트리트 저널]]》, 《[[더 네이션]]》, 《[[아틀란틱디 애틀랜틱]]》 등에서 [[기고가]]이자 [[문학 평론가]]로서 활동했으며, 저작으로는 《[[신은 위대하지 않다]]》, 《[[자비를 팔다]]》, 《[[키신저 재판]]》 등이 있다.
 
애연가이자 애주가였던<ref name=GuyRaz>Guy Raz, [http://www.npr.org/templates/story/story.php?storyId=5498172 Christopher Hitchens, Literary Agent Provocateur], [[National내셔널 Public퍼블릭 Radio라디오]], 2006-06-21</ref> 히친스는 [[식도암]]에 걸렸으며,<ref>[http://voices.washingtonpost.com/reliable-source/2010/06/rs-_hitchens.html] {{웨이백|url=http://voices.washingtonpost.com/reliable-source/2010/06/rs-_hitchens.html |date=20190324224733 }}, ''[[Washington워싱턴 Post포스트]]'', 30 June 2010</ref> 이것이 [[폐]]와 [[림프절]]로 전이되어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결국 2011년 12월 15일 [[University of Texas MD Anderson Cancer Center]]에서 사망하였다.<ref>[httphttps://www.vanityfair.com/culture/features/2010/09/hitchens-201009 Topic of Cancer], ''[[Vanity배너티 Fair페어 (magazine잡지)|Vanity배너티 Fair페어]]'', September 2010</ref><ref>{{웹 인용|last=Arnold |first=Laurence |url=http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11-12-16/christopher-hitchens-who-wrote-of-war-god-cancer-battle-dies-aged-62.html |title=Christopher Hitchens, Who Wrote of War, God, Cancer Battle, Dies Aged 62 |publisher=Bloomberg.com |date=2011-12-16 |accessdate=20112021-1205-1631}}</ref>
역시 무신론 논객으로 유명한 동물행동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히친스를 “우리 시대 최고의 연사, 동료 기수이자 신을 포함한 모든 폭군들에게 대항한 용감한 전사”라고 높이 평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https://www.slate.com/blogs/browbeatculture/2011/12/16/christopher_hitchens_tributes_slate_readers_respondchristopher-hitchens-tributes-slate-readers-respond.html |제목=Slate Readers Share Their Favorite Hitchens Essays and Memories|이름=Jeremy |성=Stahl|날짜=2011-12-16|뉴스=Slate|언어=영어|확인날짜=20112021-1205-1731}}</ref>
 
초창기에는 국제사회주의자, 인터내셔널을 지향했지만 나중에는 점차 회의주의적으로 변해갔고, 그는 우상 파괴자를 자처하였다. 그의 비판은 로마 교황청, 천주교, 개신교, 유대인,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이념을 팔아먹는 지식인 등 여러 사람에게로 향했다. 그는 또 공개석상에서 [[유대인]]을 혐오할 자유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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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초기 활동 ===
1949년 4월 13일 주홤서국태어났다영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에릭 어니스트 히친스와 이본 진 (히크먼) 히친스는 모두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스코틀랜드]]의 해군으로 활동하던 중 만나 결혼,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동생 [[피터 히친스]]가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이보네 진은 "렌"(Wren, 영국 왕립 여성 해군)의 멤버였다. 그의 아버지는 잠수함 크루저 HMS 자메이카(cruiser HMS Jamaica)의 조종사로, 나치 독일과의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노스 케이프의 전투]] 당시 샤른호르스트(Scharnhorst)에 출전하였다. 어려서 그는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해군기지가 있는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성장하였다. 그의 동생 피터는 [[1951년]] 슬리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쪽 선조들은 [[침례교]] 신자들과 [[칼뱅주의]] 신자들이 있었고, 어머니 쪽으로는 [[유대교]] 가문이었다. 그는 어려서 기독교 종교 학교를 다니면서 신앙 교육을 받았지만, 하나님을 비롯한 신에 대해서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늘 "이 나라의 상위 클래스는 항상 크리스토퍼가 차지할 것입니다"라며 어린 아들의 재능을 자랑하기도 했다. 7살 때 [[태비스톡]]의 마운트 하우스 스쿨(Mount House School)로 진학하고, 스쿨의 고학년반 학생일 때는 스스로 독립, 케임브리지 대학의 리즈 스쿨(The Leys School)로 진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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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뉴 스테이스맨]]의 에디터 교환 정책에 따라 그해 [[미국]]으로 건너가 [[뉴 스테이스맨]]지의 미국 지사인 미국의 뉴 스테이스맨 지와 [[더 네이션]] 지의 기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해 더 네이션지에 입사하였으며, 그는 강렬한 논조로 [[레이건]]과 [[조지 H. 부시|부시]] 행정부의 [[미국]]의 대 외교 정책, [[남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정책, 일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비난하는 논조의 칼럼과 글들을 발표하였다. 한편 그의 아버지는 [[1987년]] 식도암으로 사망하였다. [[미국]] 체류 이후에는 뉴스쿨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방송과 기고 등의 활동을 했다.
 
[[1992년]]에는 [[배니티배너티 페어]](Vanity Fair) 지의 편집인이 되었다. [[2007년]] [[4월]] 히친스는 미국 시민권자가 되고, [[2008년]] [[9월]]에는 후버 연구소의 회원이 되었다. [[1998년]]경부터는 [[한국]]에도 그의 저서와 칼럼들이 소개되고, [[2001년]] 이후에는 그의 저서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유통되기 시작하였다.
 
==== 자유주의자로 변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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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는 [[마더 테레사]]에 대해 [[로마 교황청]]에서 시성(諡聖)을 하려 하자 그는 테레사 수녀의 의혹을 지적하면서 반대 주장을 펼쳤다. 결국 그는 [[가톨릭 교회]]가 [[테레사 수녀]]의 시성에 대한 찬반 여론을 청취할 때, 교황청의 요구로 시성을 반대하는 반대측 증거를 제시하는 역할('악마의 대변인'이라고도 불리는)을 하였다. 이때 내놓은 증거들은 [[2008년]]에 출간한 그의 저서 《[[자비를 팔다]]》의 주제가 되었다.
 
또한 [[에릭 홉스봄]]을 빨갱이 에릭(Eric the Red)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2003년]] [[에릭 홉스봄]]의 자서전이 미국에서 출간됐을 때 칼럼니스트이자 ‘뉴스쿨’ 교수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뉴욕타임스>에 쓴 서평의 제목도 ‘빨갱이 에릭’이었다.<ref>[{{뉴스 인용|url=http://legacy.wwwh21.hani.co.kr/section-021015000arti/2007culture/01culture_general/02101500020070119064402718913.html <nowiki>[</nowiki>|제목=출판<nowiki>]</nowiki> ‘빨갱이 에릭’의 20세기] |출판사=한겨레21 2007년|날짜=2007-01-19 01월|확인날짜=2021-05-31 19일|저자=정인환}}</ref>
 
=== 생애 후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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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후 ====
[[2007년]] 히친스는 배니티배너티 페어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National Magazine Award" 상을 수상받았고, 카테고리 "Columns and Commentary"에 선정되었다. [[2011년]]에 [[식도암]]으로 투병중일 때에도 다시 한번 "National Magazine Award" 상을 헌정받았다. 2011년에는 [[미국]]의 온라인에서 설문한 100대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그가 죽기 직전에는 새로 발견된 소행성 57901에 그의 이름을 따서 히친스(Asteroid57901 Hitchens)라 명명되었다.
 
[[2010년]] [[6월]] 히친스는 자신의 회고록 홍보차 뉴욕 투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발병한 식도암의 통증으로 회고록 발표를 연기하게 되었다. 2011년 4월에는 미국 무신론자 대회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취소하게 된다. [[10월]] [[휴스턴]]에서 개최된 "Texas Freethought"에 참석하였다. 식도암이 폐와 림프절 등으로 전이되면서 병원에 입원, [[2011년]] [[12월 15일]]에 사망한다.
 
[[리처드 도킨스|리]]
 
== 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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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 없다 ===
[[2007년]] [[8월]] [[로마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50년간 하느님은 존재하느냐며 번민, 회의를 품었던 [[테레사 수녀]]의 편지가 공개되자, 그는 당연한 것이라고 비꼬았다.‘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는 테레사 수녀의 번민을 고백한 비밀편지가 공개되면서 그의 삶과 신앙이 재조명되고 있다. 평온하고 강한 신앙을 지닌 듯 했던 외면과 다르게 마음 속으로는 무려 50년 동안 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고 고통스러워 했다는 사실이 비신자와 종교인들에게 각기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고 [[AP통신]]이 [[2007년]] [[8월 25일]] 보도했다.<ref name="bibi">[http{{뉴스 인용 |url=https://newswww.hankookihankookilbo.com/lpageNews/worldRead/200708/h2007082620014122450.htm200708270071356498 |제목="신은 있다" "없다" 논란 불붙다] {{웨이백|url출판사=http://news.hankooki.com/lpage/world/200708/h2007082620014122450.htm#한국일보 |date날짜=201311120633322007-08-26 |확인날짜=2021-05-31}} 한국일보 2007.08.26</ref> 히친스는 종교적 믿음 자체가 공허한 것이라며 주말 신앙생활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위한 모임, 교회와 성당은 연애하기 위해 찾아가는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꼬았다. 테레사 수녀의 편지가 공개되자 그는 종교적 믿음 자체가 얼마나 허무하고 공허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라고 지적했다.
 
2007년 8월 초 미 시사주간 타임 최신호는 테레사 수녀의 비밀 편지를 담은 신간 <마더 테레사 : 와서 내 빛이 되라>의 주요 내용을 공개했다. 10년 만에 공개된 편지 중에는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합니까? 신이 없다면 영혼도 없고, 영혼이 없다면 예수님 당신도 진실이 아닙니다”라며 신의 존재에 강하게 회의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ref name="bibi"/> 신의 존재에 대한 냉혹한 비판서인 <미셔너리 포지션>과 무신론 서적인 <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저자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테레사 수녀도 종교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그의 계속된 신앙고백은 자신이 빠진 함정을 더 깊게 파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비꼬았다.<ref name="bibi"/>
 
그는 종교나 신은 인간이 선택한 문화적 장치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news.imaeil.com/sub_newsNewestAll/sub_news_view.php?news_id=37740&yy=20072007082711564669528 <nowiki>[</nowiki> |제목=야고부<nowiki>]</nowiki> 神의 존재] |출판사=매일신문 |날짜=2007.-08.-27 |확인날짜=2021-05-31}}</ref>
 
==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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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2007년]] 미국 시러큐스 대학의 아서 브룩스 교수는 그러나 유럽에 비해 월등히 강한 종교적 색채에도 불구하고 미국인 가운데 상당수는 미국 대선에 종교적 수사가 넘쳐나는 것을 경계한다고 지적했다. '밖으로 드러내지 못할 뿐이지 무신론에 동조하는 미국인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ref name="diridhost">[httphttps://magazine.hankyung.com/main.php?module=news&mode=sub_view&mkey=1&vol_no=614&art_no=36&sec_cd=1658business/article/202103026731b 후보마다 ‘신앙고백’… 쟁점 흐려져] {{웨이백|url=http://magazine.hankyung.com/main.php?module=news&mode=sub_view&mkey=1&vol_no=614&art_no=36&sec_cd=1658 |date=20131112061602 }} 한경매거진 2007년 9월호</ref> 브룩스 교수는 그 증거로 리처드 도킨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의 ‘만들어진 신(영어 원제는 The God Delusion)’과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God is not Great)’ 등의 반(反)종교적인 저서가 최근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른 점을 꼽았다.<ref name="diridhost"/>
 
== 관련 항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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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드리히 니체]]
* [[지그문트 프로이트]]
* [[카를 융]]
* [[고어 비달]]
{{Co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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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
{{위키공용분류}}
<references/>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
{{위키뉴스|블레어와 히친스가 캐나다에서 논쟁}}
* [http://ch.yes24.com/Article/View/23150 크리스토퍼 히친스, 그가 싸움닭이 되어가면서까지 이야기하려 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