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신학교와 원효로성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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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유형문화재 정보 | 소재_국가 = 대한민국 | 유형 = 사적 | 그림 = | 그림_설명 = | 이름 = 용산신학교와 원효로성당<br />(龍山神學校와 元曉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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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연월일 = [[1977년]] [[11월 22일]]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4가 7-1번지<br />외 1필지
| 제작_시기 = 용산신학교 [[1891년]] [[5월 6일]] 착공, [[1892년]] 6월 준공 <br /> [[원효로성당]] [[1899년]] 착공, [[1902년]] 준공
| 비고 =
}}
 
'''용산신학교와 원효로성당'''(龍山神學校와 元曉路聖堂)은 원래 파리외방전교회 용산신학교와 부속 성당이었다. 성직자 양성은 파리외방전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업 중의 하나였다. 예수성심신학교(聖心神學校)는 1885년 현재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등평리에서 개교하였으며, 신앙의 자유가 신장되던 1887년에 현재의 위치인 용산으로 이전하였다. 이전 초기에는 한옥에서 기숙하면서 교육이 이루어졌다.
 
건물이 위치한 곳은 한강을 바라볼 수 있던 함벽정(涵碧亭)이 있던 곳이었다. 지척으로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성직자들이 참수된 새남터와 기해박해(己亥迫害) 에 많은 천주교도들이 피를 흘린 당고개가 보이는 곳이었다. 파리외방전교회는 한불수호조약이 체결된 해인 1887년에 이곳을 매입하였다.
1891년 4월 7일 신학교 신부들과 지방 신부들의 바램에 의하여 신학교를 건축하기로 결정하였다. 1891년 5월 6일 신학교 정초식이 서울의 모든 신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으며, 1892년 6월 25일 축성식(祝聖式)이 있었다. 이날은 신학교의 주보(主保)인 예수 성심축일(聖心祝日)이었다. 이 건물은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학교 건물이 되었다. 1928년 이 신학교가 혜화동으로 이전함에 따라 이 건물은 성직자 휴양소로 사용되었다. 1956년 성심수녀회(聖心修女會)가 한국에 진출함에 따라 이 수녀원에 양도되었다. 신학교 건물은 프랑스 외방전교회 소속 코스트(E. J. G. Coste)신부가 설계와 감독을 하였고, 청국인(淸國人)이 시공을 하였다.
 
{{서울시공개자료}}
{{토막글|서울}}
[[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