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전 동시다발 게릴라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new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틀 이름 및 스타일 정리
1번째 줄:
'''국전 동시다발 게릴라사건'''({{llang|ja|{{ruby-ja|国電同時多発|こくでんどうじたはつ}}ゲリラ{{ruby-ja|事件|じけん}}|코쿠덴도지타하츠게리라지켄}})은 1985년(쇼와 60년) 11월 29일, 일본 수도권과 서일본의 [[일본국유철도]](국철) 시설에 대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실시된 [[게릴라]] 테러사건이다. 당시 [[국철분할민영화]]에 반대하던 [[국철 치바 동력차노동조합]](노동 치바)의 파업에 때를 맞추어 [[중핵파]]가 실행한 테러사건이었다.<ref>{{Cite book서적 인용|和書 |author=原口和久 |title=成田あの一年 |series=ふるさと文庫(177) |publisher=崙書房出版 |date=2002-04-01 |page=137 |isbn=9784845501779}}</ref> 국전이란 국철의 [[전동차]] 부문을 말한다.
 
1985년(쇼와 60년) 11월 29일 오전 3시, 수도권과 오사카부 등 총 8도부현내 각지에 있는 국철 선로의 통신・신호용 케이블이 절단되어, 수도권에서만 6노선 25개소,<ref name="yomiuri1130">{{Cite news뉴스 인용|和書 |title=ムキズ15線"連動ストップ" |newspaper=読売新聞 (朝刊) |date=1985-11-30 |page=23}}</ref> 전국적으로 33개소에서 피해가 발생했다.<ref name="rp459">{{Cite저널 journal인용|和書|title=過激派の愚行で国電マヒ(鉄道の話題)|date=1986-02-01|publisher =[[電気車研究会]]|journal=[[鉄道ピクトリアル]] 1986年2月号|volume=36|issue=2|pages=107}}</ref><ref>[http://hakusyo1.moj.go.jp/jp/27/nfm/n_27_2_1_2_5_2.html 昭和61年版 犯罪白書 第1編/第2章/第5節/2 ゲリラ事犯]</ref> 역간주간케이블 등 굵은 케이블은 절단하지 않고 못을 박아 반도체 단락을 유발해 못쓰게 만들기도 했다. 케이블 절단 외에 변전시설과 신호시설에 대한 방화가 8건 있었다.<ref name="yomiuri1129">{{Cite news뉴스 인용|和書 |title=中核派ら48人逮捕 23線区ストップ |newspaper=読売新聞 (夕刊) |date=1985-11-29 |page=1}}</ref> 직접적으로 표적이 된 노선 외에도, 그 노선들에 접속 또는 분기하는 다른 구간에서도 [[CTC]]나 [[지령전화]]를 통신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국철 22구간<ref name="asahi">{{Cite news뉴스 인용|和書 |title=国電、全面ストップ 首都圏20線区・大阪2線区 |newspaper=朝日新聞 (夕刊) |date=1985-11-29 |page=1}}</ref> 및 [[세이부 철도]] 일부 구간이 운행불능이 되었다.<ref name="yomiuri1129" /> 피해를 받은 노선들은 당일 저녁까지 모두 복구되었으나, 수도권에서 우등열차를 포함해 2896편, 오사카 일대에서 378편의 열차가 운휴했다. 이는 통근통학객 650만여명에게 영향을 끼쳤다.<ref name="rp459" />
 
당시 [[나카소네 내각]]에서 추진한 국철 민영화에 강력히 반대한 노동 치바를 지지한 중핵파의 소행으로 단정되었고, 아사쿠사바시역 방화 실행범에는 현역 국철직원도 2명 포함되어 있었다. 후에 [[스기나미구]]에서 의회의원을 하는 [[키타시마 쿠니히코]]도 관여하여 실형판결을 받았다. 당시 일반 철도 이용객들은 민영화에 거세게 반대하는 파업으로 자신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고, 이 사건으로 인해 여론은 더욱 민영화 지지로 쏠리게 되었다. 함께 민영화에 반대하는 입장인 [[국철노동조합]](국노), [[국철동력차노동조합]](동노), [[일본공산당]]도 이 사건은 비난했다. 다만 이들 조직은 원래 중핵파와 대립관계에 있었다.<ref name="rp4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