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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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12월, 이웅은 나상을 물리치고 성도를 점령하였으며, 이후 익주 지역을 장악하였다. 익주의 현자 범장생(范長生)을 영입하려 하였으나 범장생이 거절하여 실패하였다. [[304년]] 10월, 이웅은 여러 부하들의 추대로 성도왕(成都王)에 즉위하고 연호를 고쳐 [[건흥 (성한)|건흥]](建興)이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이때를 성한이 건국된 기점으로 본다. [[306년]] 3월에는 범장생이 이웅에게 투신하였고 이웅은 그를 승상(丞相)으로 삼았다. 6월에 이르러 이웅은 황제에 즉위하고 국호를 '''대성'''(大成)이라 하였다.
 
이웅의 치세에는 범장생 등에 의해 법을 간소화하고 현명한 정치를 펼쳐 30년 가까운 재위 기간 동안 안정된 평화를 누렸다. 그러나 정실 황후로부터 자식을 얻지 못하여 후궁 소생의 아들 10여 명만 두었으며, 일찍 죽은 형의 아들 이반(李班)을 태자로 삼았다. 이로 인해 일부 종실들 사이에 반발이 있었다.
 
[[334년]]에 6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334년]], 61세에 사망을 하였다. 친자식이 아니고, 현명한 조카 이반(李班)을 태자로 정했지만, 친자식들의 반발을 사, 이것이 성한의 쇠망을 부르는 원인이 된다.
 
{{왕 계승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