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요스 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웹 |
편집 요약 없음 |
||
8번째 줄:
가장 큰 쟁점은 오다 가의 후계자 문제였고, 여기서 시바타 가쓰이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3남인 [[오다 노부타카]]의 옹립을 지지하였다. 하시바 히데요시 및 2명은 오다 노부나가의 적손 산보시([[오다 히데노부]])의 옹립을 지지하였다. 히데요시는 미쓰히데 토벌로 발언권이 강했으며, 시바타 가쓰이에를 제외한 2명의 지지와 3남 오다 노부타카는 간베 가문의 양자로 있었기 때문에 정통성에 있어서 적손인 산보시보다 약했다. 이 같은 이유로 오다 가문의 후계자는 오다 히데노부로 결정되었고, 히데요시는 그의 [[후견인]]으로 히데노부를 보좌하였다. 하지만, 실권은 히데요시에게 있었다.
영지 재분에서는 오다 노부나가의 차남 노부카쓰가 [[
기요스 회의로 인해, 그 때까지 중신의 필두로 최대 발언권을 가진 시바타 가쓰이에의 영향력이 저하되었고, 대신 하시바 히데요시가 중신의 필두로 부상등, 오다 가문내 가신들의 세력이 크게 바뀌었다. 이 대립은 후에 [[시즈가타케 전투]]로 이어졌으며, 하시바 히데요시가 천하를 쥐는 발판이 되었다.
18번째 줄:
|[[파일:Shibata Katsuie large.jpg|섬네일|왼쪽|150px|[[시바타 가쓰이에]] 상]]
|[[파일:Niwa Nagahide2.jpg|섬네일|왼쪽|149px|[[니와 나가히데]] 상]]
|[[파일:Toyotomi
|[[파일:Ikeda Tsuneoki.jpg|섬네일|왼쪽|177px|[[이케다 쓰네오키]] 상]]
|}
|